[성명서]국회는 전기통신사업법 53조 위헌결정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

  • 2002-11-08
  • 1
  • 일반게시판

국회는 전기통신사업법 53조 위헌결정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모임")은, 지난 1999년 8월 나우누리 찬우물 게시물 삭제 사건에 대해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 같은 법 제71조 제7호중 제53조 제3항 부분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헌법소원을 청구한 바 있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2002년 6월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으며, 이같은 결정에 따라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는 효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법안의 소관부처인 정보통신부는, "정보통신부장관에게 온라인매체를 포함한 전기통신 전반에 걸쳐서 표현의 자유를 통제할 권한을 주고·전기통신을 이용하는 자에 대하여 9개 항목의 포괄적인 전기통신의 금지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정보통신부장관에게 내용통제권을 주는 것은,





첫째,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검열로서 기능하게 되며


둘째, 전세계적으로도 온라인매체에 대해서 사법기관이 아닌 행정기관의 내용규제는 허용되지 않고 있으며


셋째,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문에서 "전기통신에서의 표현상의 해악의 시정은 시장의 자유경쟁 매커니즘에 맡겨야 한다"고 밝힌 데서도 알 수 있다시피 명백히 위헌적인 내용이다.





또한, 전기통신을 이용하는 자에게 금지의무를 부과하는 것도,





첫째, 표현의 내용에 대한 규제는 필요최소한으로 제한되어야 한다고 헌법적으로 요구되고 있으며


둘째, 금지의무로 제시하는 9개 항목이 표현의 자유의 제한원칙인 명확성의 원칙·최소침해의 원칙·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성의 원칙에 반하기 때문에 위헌성이 있는 것이다.






만약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제53조가 통과되면, 정보통신부장관은 불법정보라는 명목으로 법원의 판결없이도 웹사이트를 삭제하거나 폐쇄시킬 수 있게 된다. 정보통신부장관은 국가의 시책에 대하여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웹사이트를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폐쇄할 수도 있고, 한총련에서 만든 웹사이트와 한총련을 지지하는 웹사이트를 폐쇄할 수도 있다. 다소 외설적인 웹사이트도 음란한 웹사이트라고 해서 법원의 판결 없이도 폐쇄시킬 수도 있고, 청소년유해매체물을 다루는 웹사이트는 신원확인과 연령확인을 하는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폐쇄될 수도 있다. 신문사 웹사이트나 방송국 웹사이트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물론 사후적으로 법원에서 그 부당성을 다툴 수 있겠지만, 구제를 받으려면 2-3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따라서 2-3년이 지난 후에나 다시 글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구제가 되어도 정보통신부장관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따라서 정보통신부 장관은 아무 거리낌없이 규제권을 행사할 것이다. 정보통신부장관이 스스로 웹사이트의 내용이 불법적이라고 판단하고 법원의 판결을 거치지도 않고, 막바로 웹사이트를 폐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망선고이다.






인터넷은 인류가 발명한 가장 참여적인 사상의 시장이며, 표현의 마당이다. 모든 신문사와 방송사가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수 많은 웹사이트가 있고, 커뮤니티가 있고, 인터넷 카페가 있고, 전국민의 대다수인 3000만명 이상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 인터넷에 포함된 정보와, 인터넷을 이용하여 유통되는 정보는 오늘날 그 어떤 표현매체보다도 압도적으로 많다. 또한, 이 모든 것과 전자우편마저 정보통신부장관의 소관이 된다. 그 운명을 정보통신부장관에게 준다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우리사회에는 정보통신부장관이라는 빅브라더가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제53조는 일개 행정부처 장관의 인터넷에 대한 통제기도이다. 이것은 정보통신부장관이 인터넷이라는 광대한 표현의 공간을 지배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보통신부 장관은 한국에서 이루어지는 표현의 반 이상, 아니 대다수를 통제하게 된다. 언론사 사주도, 방송사 사장도, 기자도, 홈페이지를 만든 국회의원도, 인터넷을 이용하는 전국민과 전자우편을 이용하는 전 국민이 정보통신부장관의 검열의 칼 아래 놓이게 되며, 사후적인 구제수단을 제공하는 데 불과한 법원도 힘을 쓸 수가 없다.






법원이 관여하지 않고는 정부가 신문사의 폐간을 명령할 수 없듯이, 법원의 판결에 의하지 않고는 정보통신부 장관이 웹사이트의 폐쇄를 명령할 수 있어서는 안된다. 정보통신부장관이 인터넷이라는 광대한 표현의 공간에서 웹사이트를 삭제하거나 폐쇄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는 것은 문화관광부장관이나 국정홍보처장이 신문사와 방송국에 대하여 내용삭제, 정간, 폐간 등의 명령권을 갖겠다고 하는 것보다도 더 비민주적인 발상이다. 인터넷은 신문과 방송보다도 덜 규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헌법재판소의 결정이고, 전 세계 민주국가의 사회적 합의이며, 우리 사회의 합의이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에 대한 위헌결정에서 인터넷에서는 질서위주의 사고만으로 규제하려고 할 경우 표현의 자유의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인터넷에 대하여 일개 행정부의 장관에게 웹사이트 폐쇄권을 주고 있는 나라는 중국 등과 같은 극소수의 국가를 제외하고는 없는 것이며, 이들 국가는 국제사회에서 '인터넷의 적'으로 규정되어 인류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제 우리나라가 그 '인터넷의 적'으로 당당히 나아가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국회에서 이 법이 통과될 경우 우리나라가 '인터넷의 적'임을 국제사회에 고백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제53조는 헌법재판소가 헌법이 절대적으로 금지하는 검열에 해당할 것이라고 본 바로 그 내용이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에 대한 위헌결정에서 정보통신부장관의 전기통신에 대한 취급거부 정지 제한명령제도는 형식적으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후제한이지만, 이용자-전기통신사업자 및 전기통신사업자-정보통신부장관의 역학관계에 비추어 볼 때 전기통신사업자는 정보통신부장관의 취급거부 등 명령이 없더라도 미리 사용약관 등에 의하여 이용자의 통신내용을 규제하고 이에 따라 이용자는 스스로 조심할 수밖에 없는, 실질적으로는 상시적인, 자체 검열체계로 기능하기 쉽다고 하여 이를 실질상 헌법에서 절대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검열에 해당하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도 정부에 전기통신의 취급거부·정지·제한명령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법률의 규정에 대하여 위헌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물론 인터넷의 불법정보에 대하여 규제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 규제는 수사기관이나 사법기관의 규제로 족하며, 지금도 인터넷의 불법정보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이나 사법기관의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수사기관이나 사법기관의 규제를 넘는 행정부의 규제는 불필요하며, 득보다 해악이 더 크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인터넷의 불법정보에 대하여 수사기관이나 사법기관의 규제만으로 대응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불법정보의 유통을 막기 위해 정부가 법원의 판결을 받기 전에 신속히 웹사이트를 폐쇄하겠다는 것은 신문에 보도되는 명예훼손 기사를 막기 위해서 정부가 법원의 판결을 받기 전에 신속히 신문기사를 삭제하거나, 폐간시키겠다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앞서 모임은 정보통신부 주최 공청회에서 이러한 의견을 충분히 개진하 바 있으며, 이후 국회 해당위원회인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공청회를 통해서도 사법부가 아닌 행정기관이 전기통신의 내용에 대해 규제권을 행사하는 것 등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왜곡할 소지가 있음을 분명히 지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는 이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현재 이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의 검토와 본회의에서의 심의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모임은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가 다시 한 번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받지 않기를 바라며, 아래와 같이 주장한다.





1.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효력이 상실된 전기통신사업법 제53조를 되살리는 내용의 위헌적인 개정안은 폐기되어야 한다





1.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과 국회의원들은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의 뜻에 따라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는 것을 반대해야 한다




2002. 11. 8. (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