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국가보안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
- 200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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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게시판
한나라당 국가보안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
1. 들어가며
한나라당은 17대 정기국회가 개원된 이래 국가보안법에 관한 당론을 정하지 못한 채 ‘국가보안법 폐지 결사 반대’의 목소리만 높이며, 다른 국회 일정에까지 막대한 차질을 빚게 했다. 최근에야 비등한 비판 여론에 밀려 몇 가지 개정안을 급조한 바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마련한 개정안들은 테러방지법과 뒤섞여 현 국가보안법보다 훨씬 더 반인권적이거나 이름만 ‘국가안전보장법’으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 언론에는 그 중 한나라당 국가보안법 TFT에서 마련한 개정안이 당내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개정안은 첫째 현행 국가보안법 체제의 골격 유지, 둘째 핵심조항인 제2조 반국가단체 조항과 제7조 소위 이적표현 부분의 일부 표현 수정, 셋째 대표적 독소조항인 불고지죄 등의 삭제를 그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개정안 역시 일부 조항의 수정 혹은 삭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보안법이라는 권위주의시대․냉전시대의 유물을 존치시키겠다는 입장에서 나온 것이므로 한나라당의 여타 개정안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국가보안법의 핵심조항이 거의 개선되지 않은 이 개정안이 수용된다면, 오히려 사문화되어가던 국가보안법에 재기의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 되고 말 것이다.
2. 한나라당 국가보안법 개정안 비판
가. 국가보안법 존치론에 다름 아니다.
국가보안법은 해방 직후 혼란한 비상사태를 규율하기 위해 만든 법이며, 형법이 제정될 때까지만 기능하는 한시법으로 제정된 것이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은 분단현실을 빌미로 그 목숨을 연장했고, 독재정권의 보호막인 ‘정권안보법’으로 악용되어왔다. 국가안보가 아니라 정권안보를 위한 반인권적 탄압을 합법화하는 악법으로 기능해왔던 것이다. 최근 한나라당의 색깔공세로 불거져 나온 안기부(현 국정원) 등 공안기구의 고문과 용공조작 사건들이 그 단적인 예이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이 법으로서의 권위를 잃어버린 지는 이미 오래다. 국가보안법 처벌자들은 법적으로, 정치적으로 거의 예외없이 사면 복권되었고, 간첩이 아니라 민주화 운동세력이 국가보안법에 따라 빨갱이로 매도당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더욱이 탈냉전과 남북화해협력의 시대를 맞아, 반공수호의 보루였던 국가보안법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한나라당의 국가보안법 개정안은 국가보안법 체제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존치론적 입장에서 마련된 대안이다. 이 정도 수준의 개정으로는 수십 년 동안 독재와 권위주의의 시대에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살아온 부끄러운 과거사를 결코 청산할 수 없다. 오히려 사문화되어가던 국가보안법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역설적인 결과만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나. 제2조 [정의] 개정안
[안] 제2조 [정의] ① 이 법에서 “반국가단체”라 함은 정부를 표방하면서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으로서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단체를 말한다.
(1) 한나라당이 국가보안법의 해악적 요소에 대해서 최소한의 개선의지도 없음은 제2조 개정안에서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개정안은 종전의 ‘정부참칭’ 규정을 ‘정부를 표방하면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바꾼 것인데, 참칭과 표방은 법률적 의미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으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지금까지 법원과 검찰의 해석에 비춰 볼 때 전혀 무의미한 사족에 불과하거나 오히려 처벌범위를 더 넓힐 우려까지 있기 때문이다. 이 개정안에 따르더라도 북한은 여전히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정부표방단체인 반국가단체로 해석되며,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해석하는 한 권위주의적 정부에 대해 비판적 활동을 하는 국내의 단체들을 북한의 주장과 동일 또는 유사한 주장을 한다고 매도함으로써 역시 반국가단체 또는 이적단체로 처벌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하등 달라진 것이 없다.
(2) ‘대한민국의 정통성 부정’ 부분은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하여 형벌법규의 명확성 원칙이라는 죄형법정주의에 반하는 위헌적 규정이다. 이는 국가보안법의 위헌성 정도를 더욱 강화시켜 오히려 자의적인 법적용·남용의 여지를 넓히는 문제를 야기한다. 본래 정통성이란 어느 주체가 가져야 할 정당한 법통을 의미한다. 정치사적으로 볼 때 ‘정통성’ 은 지배권력이 자신들의 기득권에 대항하는 세력을 억압하면서 이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어왔다. 특히, 정통성에 흠결이 있는 지배집단일수록 오히려 더욱 정통성에 집착하는 양태를 보여왔다. 이러한 점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이란 규정은 헌법과 같은 고도의 추상적 규범이라면 몰라도 형벌법규로서는 전혀 적합하지 않으며, 자의적인 해석여지를 더욱 넓혀 위헌적 요소를 가중시킬 뿐이다.
(3) 무엇보다도 한나라당 개정안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북한을 여전히 반국가단체로 낙인찍고 있다는 것이다. 반국가단체 개념이야말로 국가보안법 전체의 열쇠, 핵심이자 존재이유에 해당되는 조문이다. 반국가단체를 전제로 이와 관련되는 다양한 행위(가입, 지도적 임무 종사, 그 구성원과의 만남)를 처벌하는 것이 국가보안법의 주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북한은 국제법상 공인된 국가이지 더 이상 반국가단체가 아니다. 국가보안법과 그 법을 적용하는 사법부, 그리고 반공과 반북을 넘어서지 못하는 수구세력의 눈에만 반국가단체인 것이다.
(4) 국가보안법은 제2조 반국가단체 규정을 골간으로 하여 이와 관련되는 제반행위를 처벌하는 체제로 되어 있다. 마치 제2조를 뿌리로 하여 나머지 규정들이 얽혀 있는 고구마줄기와 같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은 제2조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는 이상 일부조항을 첨삭하는 부분 개정만으로는 국가보안법으로 초래된 해악을 결코 제거할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할 목적의 단체는 형법의 내란죄 관련규정으로 충분히 규율할 수 있는 이상 국가보안법의 반국가단체 규정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악용의 여지를 감수하면서 존속시킬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 제7조 [찬양․고무 등] 개정안
[안] 제7조 [찬양 · 고무 등] ①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목적으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이나 국가변란을 공공장소에서 찬양하거나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⑤ 제1항·제3항의 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수입·반포 또는 판매한 자는 그 각항에 정한 형에 처한다.
(1) 한나라당 개정안은 종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를 ‘...목적’으로, 종래 ‘찬양·고무’를 ‘공공장소에서 찬양’으로 바꾸고, ‘허위사실 날조(제4항)’와 ‘이적표현물 복사·소지·운반’ 규정을 삭제한 것인데, 이는 국가보안법 제7조의 적용에 있어서 거의 아무런 변화도 없이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2) 주관적 구성요건으로서의 ‘목적’의 문제
지금까지 국가보안법 적용 과정에서 주관적 요소인 ‘정을 알면서(고의)’나 ‘목적’은 수사의 대상조차 아니었다. ‘이적표현물’과 같은 특정 증거자료나 활동내용만 확인되면 주관적 요소인 ‘고의’는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관적 요건인 ‘정을 알면서’를 ‘목적’으로 바꾸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 본래 형법 이론에서 「목적」은「고의」보다 강화된 주관적 구성요건으로서 기능해야 한다. 그러나 법원은 이적표현물 소지 등에서 ‘목적'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서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 위반죄는 … 이른바 목적범이기는 하나 그 목적은 그 행위에 대한 적극적 의욕이나 확정적 인식까지는 필요 없고 미필적 인식으로 족한 것이므로 행위자가 표현물의 내용이 객관적으로 보아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대남선전, 선동 등의 활동에 동조하는 등의 이적성을 담고 있는 것임을 인식하고, 나아가 그와 같은 이적행위가 될지도 모른다는 미필적 인식이 있으면 위 조항 구성요건은 충족된다(대법원 1992. 3. 31. 선고 90도2033 판결, 1992. 7. 14. 선고 91도41 판결 등)”고 하여, 미필적 고의와 같은 수준으로 해석해 왔다. 따라서 “… 정을 알면서”를 “…할 목적으로”라고 개정한다고 하여, 처벌 범위가 축소되거나 남용의 소지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3) ‘선전․선동’ 의 문제
종래 ‘찬양․고무’ 규정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것은 ① 용어의 불명확성․애매함 (그로 인한 남용의 가능성), ② 특정 사상에 대한 호의적인 생각․의사 표명 자체를 처벌대상으로 삼아 양심․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점, ③ 북한의 주장과 유사하거나 동일하기만 하면 무조건 처벌하여 남북간 적대 관계를 고착화시킨다는 점 등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개정안은 ‘고무’등의 한 두개 단어만 수정하였을 뿐 이와 같은 문제점을 그대로 온존시키고 있다.
구체적인 국헌 문란 목적의 폭동을 ‘범할 것’을 선전․선동한 경우만 처벌한다면 현행 내란 선전․선동(형법 제90조 제2항)으로 충분하고, 그 외의 것을 처벌하는 것은 과잉형법이다. 게다가 어떤 주장에 대해 동의를 얻기 위한 의사표시만으로 중형에 처하는 것은 명백히 사상․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개념상으로도, ① 「선동」이라는 법률 용어의 본래적 의미는 “불특정 다수인에 대하여 감정적인 자극을 주어 정당한 판단을 잃게 하여 범죄 행위의 결행을 하게 하거나 또는 이미 존재하는 결의를 촉구하게 하는 것”이므로, ‘단체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대상으로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② 「선전」은 “불특정다수인에 대하여 특정사항에 관한 취지를 주지․이해․납득시켜 동의를 얻기 위한 의사표시”이므로 ‘(단체나 사람을) 선전한다는 것’의 의미는 매우 폭넓게 해석될 수 있다. 그러므로 종래 국가보안법상의 ‘찬양․고무’ 개념처럼 확대 해석된다면, 특정 단체나 사람․사상에 대한 호의적인 견해 표명조차 처벌대상으로 삼아, 종래 「찬양․고무」와 같이 처벌범위가 넓어질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우리 법원이나 수사기관은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주장 등에 찬성하거나 이에 동의하는 의사를 표현하는 행위에 대하여, 그것이 찬양, 고무, 선전, 동조 중 어디에 해당되는가에 대한 명확한 구별 없이 이 죄의 성립을 인정함으로써 쉽사리 이 항의 적용을 확대하여 왔기 때문에, 찬양․고무만 없앤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거의 없다.
(4) ‘공공장소에서의 찬양’ 문제
어떤 장소를 ‘공공장소’로 보아 처벌할 것인지, 여전히 조문이 불명확하고 애매할 뿐만아니라 그 동안 법원이 전파가능성 이론을 통해 ‘공연성’을 광범위하게 넓혀온 것을 고려하면 ‘공공장소’ 규정은 적용범위를 절대로 좁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지극히 사적인 장소면서 상당한 출입 제한이 있는 장소가 아닌 경우는 모두 공공장소에 해당할 수 있어 여전히 양심․사상․표현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
현행법 중 ‘공공장소’라는 구성요건을 가지고 있는 처벌 조항은, 공공장소에서 일반인의 평온한 생활을 보호하고자 하는 경범죄처벌법․동물보호법 등에서나 발견할 수 있다. ‘공공장소에서 일반인의 평온한 생활’은 공중도덕이나 질서를 보호하는 법률에 적합할 수는 있어도 국가안전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국가보안법에 적합한 규정이 아니다. 이런 규정을 국가보안법에 삽입하는 것은 공중도덕 위반 정도의 경범죄 위반행위를 징역형만 규정된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고자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한편 종래 조문의 ‘찬양’이라는 행위 자체가 내밀한 장소에서 사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모두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다수에 대한 표현 행위- 즉, ‘공연성’을 이미 내포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공공장소에서의’라는 표현은 사족에 불과하고, 종전보다 처벌 범위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5) 허위사실 날조죄(제4항)와 이적 표현물 ‘복사․소지․운반’ 삭제의 문제
허위사실 날조죄는 이승만 정부시절의 ‘유언비어 유포죄’에서 기원하는 것으로서, 근래들어 거의 적용되지 않던 규정이다. 이미 사문화된 조항을 삭제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의 폐해를 없애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하며,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종래 제7조 제5항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구체적인 행위에 앞서 ‘이적 표현물’ 이라는 구성요건이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해 왔다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자신의 사상 또는 의견을 언어․문자 등으로 불특정 다수인에게 표명하거나 전달함은 물론 알 권리․언론매체접근권․반론권 등을 포함하는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법원은 친북․반자본주의적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표현”으로 보아 처벌하여 왔기 때문에, 몇 가지 개인적 이용 행위를 처벌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제작․판매를 제한함으로써 학문․사상의 자유의 본질인 자유로운 언론매체 접근권을 박탈하여, 학문․예술․문화 발전을 저해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점은 그대로 남는다.
(6) 결론적으로, 제7조의 문제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에 위배되어, 일반적인 표현행위를 처벌하는데 있다. 한나라당은 단순히 몇 가지 행동 유형에 대한 표현을 삭제하거나 달리하는 방법으로 남용의 우려를 줄일 수 있다고 하고 있으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실질적으로는 변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여전히 일반적인 표현행위를 처벌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따라서 비폭력적이고 명백․현존하는 위험성도 없는 표현행위를 처벌하는 제7조 자체를 삭제하지 않고서는, 기본권의 본질적 제한을 피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3. 맺음말
한나라당은 말로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전향적 방향으로’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당내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는 국가보안법 TFT의 개정안을 살펴보면, 존치론적 입장이 확고한 바, ‘시대흐름’에는 한참이나 뒤쳐진 것이다.
우리는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시대사적 과제가 타협과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누차 천명한 바 있다. 현실정치는 타협의 산물이지만 국보법의 문제는 당리당략의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한편 당리당략 차원에서 보더라도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에 사활적 이해관계를 가지거나, 또 국가보안법 폐지에 막연한 불안감을 가진 이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그러한 이들이 한나라당의 주요한 지지기반임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박근혜 대표는 수구적 이미지를 불식시키지 않는 한 그 미래가 어둡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한나라당은 두차례 집권에 실패했는데, 그 실패는 우연적인 결과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임을 자각해야 한다.
국가보안법 개폐를 둘러싼 논점은 이미 분명해졌으므로 폐지 절차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더구나 국가보안법이 소모적 정쟁의 대상이 되는 국면은 하루빨리 종식되어야 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지연시키려는 어떠한 시도도 우리는 단연코 반대한다.
2004년 12월 24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이석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