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의 과거 청산 작업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국정원 진실위원회의 인혁당 및 민청학련 사건 조사 결과 발표를 보고-
- 200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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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게시판
-국정원 진실위원회의 인혁당 및 민청학련 사건 조사 결과 발표를 보고-
1. 2005. 12. 7.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진실위원회)는 인민혁명당(인혁당) 및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 사건의 전 과정에 당시 최고 권력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되었고, 정권유지의 필요에 따라 수사방향을 미리 결정하여 조작한 사건이라고 그 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국가정보원 스스로 전신인 중앙정보부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 고문․조작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한 것이라는 점에서 아주 큰 의미가 있다.
2. 이미 2002. 9. 12.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수사과정에서 물고문, 전기고문 등의 가혹행위가 이루어졌고, 공판조서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게 기재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를 근거로 사형 집행을 당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피고인 8명의 유가족들은 2002. 12. 10. 법원에 재심 청구를 하였다. 그러나 3년이 다 된 지금도 재심개시 결정조차 내려지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형사소송법상 재심의 요건이 너무 엄격하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겠지만, 사법부가 ‘독재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한 부끄러운 과거를 청산하겠다는 의지가 부족한 것이 재심개시 결정 지연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것이다.
3. 이제는 사법부가 답할 차례이다. 이미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고문이나 조작 관여자에 대한 유죄판결을 받아낸다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고, 정권의 필요에 따라 수사방향을 정하고 고문․조작하였음을 뒷받침할 만한 서류도 남아있지 않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명확한 증거를 제출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기관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나 국정원 진실위원회의 조사결과를 확정판결을 대신할 만한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법부 스스로 자신의 치욕스러운 잘못을 밝히고 피고인들과 유가족들의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영영 포기하는 셈이다. 그러한 사법부를 국민은 더 이상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사법부는 재심을 개시하고 그 재심을 통하여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고인과 유가족들의 명예를 법적으로 회복시켜야 할 것이다.
4. 이 사건 외에도 과거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사법부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고문으로 조작된 사건들에 대해 유죄판결을 선고함으로써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한 사건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사건들에 대하여도 정확한 진상조사와 더불어 재심을 통한 명예회복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확정판결이 있는 사건에 대해서는 사실상 진상조사가 이루어지기 어렵게 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을 개정하고, 나아가 과거 청산 관련 진상규명을 담당하는 국가기구 또는 위원회에서 고문, 조작된 것으로 밝혀진 사건에 대해서는 재심을 통한 명예회복이 가능하도록 하는 특별규정을 마련하여야 한다.
5. 우리 모임은, 이번 발표를 계기로 독재 권력이 사법절차를 이용하여 국민의 권리를 짓밟고 고문 등 가혹행위로 사건을 조작한 사실들을 밝혀내고, 법적으로 그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작업이 더욱 강력하게 추진되어 나아가기를 바란다. 또한 사법부가 독재 권력에 협력한 과거를 청산하고 훼손되었던 사법정의를 다시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을 촉구한다.
2005. 12. 8.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이석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