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 기간 중 가장 놀라웠던 세션은 바로 ‘Trust Conference Action'이었습니다. 이틀 간 일정의 마지막에 열린 두 번의 세션인데, 여성권익 향상과 인신매매 퇴치를 위해 일하는 단체의 리더들이 나와 단체의 활동을 소개합니다. 시설로 유입되는 아동의 인신매매 방지 활동을 하는 Lumos, 인도 뭄바이 홍등가에서 자라난 여아들의 심리 및 교육 지원을 하는 Kranti 등 총 7개의 단체가 나와 활동을 소개하고, 교육 커리큘럼, 법률자문, 안정적인 활동 공간을 위한 자금 등 지금 각 단체가 필요한 것들을 활동소개 마지막에 공개합니다. 단체 대표들의 스토리를 들은 참가자들은 즉석에서 바로 손을 들고 제공 가능한 자원을 그 자리에서 약속합니다.

예를 들어, Lumos의 경우, 무료 법률자문과 시설 중심 아동 보호에서 가족, 커뮤니티 중심의 보호로 전환하기 위해 일하는 돌봄 혁신가들과 기업과의 연결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스위스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금융기업 UBS 재단 관계자가 손을 들고, 현장에서 ‘Lumos 활동의 취지에 깊이 공감하며, 20억(USD 2 Million)을 지원하겠다’라고 밝혀 모두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이 밖에도 교육 커리큘럼의 온라인 플랫폼 구축을 위한 기술, 본인들이 개발한 아동을 위한 동화책 설명 프레임, 당장 줄 수 있는 것은 없지만 본국의 시민사회에 열심히 알리겠으니 앞으로 계속 네트워킹 하자는 약속 등 다양한 연대의 모습에 모든 사람들이 함께 울고, 웃으며 서로를 격려하였습니다. 상품으로 옥션을 진행하는 모습은 많이 보아왔지만, 이렇게 '연대의 약속'으로 옥션 아닌 옥션을 진행하는 기획에 저도 감동 받았고, 어떻게든 한국 인권단체들도 멀지 않은 미래에 활동을 소개하는 자리, 연대를 약속하는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4. 우리나라 인신매매 관련 의제
저는 민변에서 상근으로 일하기 전, 인신매매 연구 담당관으로 일하던 경험으로 바탕으로 이 컨퍼런스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요, 우리나라에도 현대판 노예제도인 인신매매에 취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신매매는 사람의 '이동'과 관련된 범죄인만큼 특히 이주민들이 성착취, 노동착취를 목적으로 한 인신매매의 피해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연예흥행비자(E-6-2)를 가지고 한국에 입국하는 대부분의 필리핀 여성들은 현지 송출업체로부터 일자리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고 입국하여 비자 본래의 목적인 가수로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경우, 업주의 강제/위력에 의한 성매매의 피해자가 됩니다. 그러나 수사기관은 이 여성들을 피해자로 식별하지 않고, 불법 성매매로 처벌하고, 강제출국 시키는 일이 빈번합니다. 또한 대한민국 연근해나 한국 국적의 원양어선에서 일하는 외국인 선원들 역시, 경제사회적으로 취약한 위치에서 고용계약서, 근로환경 등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길게는 1년 동안 육지를 밟지 못한 채 바다에서 강제노동을 하게 됩니다.
인신매매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국제규범 중 하나인 '유엔 초국가적 조직범죄 방지협약을 보충하는 인신매매, 특히 여성과 아동의 인신매매 방지, 억제 및 처벌을 위한 의정서'를 우리나라는 2015년에 비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형법 상의 인신매매 정의는 협소하고, 피해자의 보호과 지원, 범죄의 예방에 관한 포괄적 인신매매 방지법은 부재한 상황입니다.
올해 12월의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뿐 아니라 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지속적으로 한국의 포괄적 인신매매 방지법 제정 및 피해자 식별과 보호에 국가적 노력을 강화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할 일이 많습니다.
5. 2019년 트러스트 컨퍼런스를 기대하며
컨퍼런스에 처음 참석해 본 것이라 모든 것이 흥미롭고 감동적이었지만, 아쉬웠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2016년부터 컨퍼런스에서는 'Stop Slavery Award'를 기업에도 수여하는데 올해에는 애플과 유니레버가 수상기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100% 동의할 수 있는 수상은 아니었지만 다른 스칼러들과 함께 앞으로 기업이 더 열심히 하라는 뜻이 아니겠냐며 씁쓸하게 소회를 나누었습니다.
또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참가자들 대부분이 유럽, 미국, 아프리카 및 소수의 서아시아 지역 출신이었고, 컨퍼런스에서 다루어졌던 이슈 역시 위 지역 중심이었습니다. 동아시아/동남아시아 지역 여성인권과 인신매매 현황에 대한 공유는 거의 없었고, 저를 포함한 아시아 지역 참가자 역시 극소수였습니다.
반가운 만남도 있었습니다. 2015년 한국의 E-6-2 정책대안 네트워크의 일본 현지 인신매매 비교 조사를 도와주었던 일본 여성 변호사님 한분을 만나 앞으로 아시아 지역 이슈를 활발히 알릴 것을 함께 다짐하였습니다. 대중의 이슈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인신매매 피해 생존자들과 함께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끈질기게 법과 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는 동료들이 필요합니다. 내년에는 더 많은 민변회원들과 함께 컨퍼런스에 참석하게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