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인터뷰] 서채완의 비상행동: 내란의 종식 / 서채완 회원
- 2025-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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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제271호에서는 민변의 상근변호사이자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 공동상황실장을 맡아 윤석열 파면을 이끌어내는데 1등 공신의 역할을 한 서채완 회원을 모셨습니다. 서채완 회원이 전하는 123일간 이어진 윤석열 파면 투쟁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안녕하세요! 서채완입니다.
저는 윤석열이 파면된 4월 4일 이후 안식월 3개월을 보내고, 주로는 비상행동의 잔여업무와 아이의 등하원을 챙기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작년 12월 3일, 늦은 밤 집을 나서면서 혹시나 아이를 당분간 못보게될까봐 걱정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를 볼 때마다 다행이라 생각하고, 부족하지만 성장하는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며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긴 시간이, 다채로운 풍경 속에 투쟁이 진행될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칭찬 한 마디를 굳이 하자면 부끄럽지 않게, 큰 탈없이, 그 시간동안 충분히 활동한 것 같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비상행동 활동가들, 민변 회원들 모두가 정말 눈물날만큼 헌신적이고 멋졌다고 자화자찬하고 싶습니다.

비상행동은 1,700개가 넘는 단체가 모인 연대체입니다. 대표자 회의를 통해 정한 체계에 따라 조직을 구성하는데, 여력이 되는 단체에서 비상행동의 업무를 전담으로 지원하기 위해 활동가들을 파견하고 그곳을 상황실이라고 합니다. 제가 맡은 공동상황실장 직책은 저를 포함한 총 4분의 활동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는 선배 활동가 3분(엄미경, 이재근, 정용준)과 함께 공동상황실장 중에서도 막내로서 역할을 했습니다.
상황실장은 상황실의 실무를 집행하는 책임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표자회의, 운영위원회 회의 등을 통해 정해진 사업계획을 구체적으로 집행하는 역할을 합니다. 부수하는 회의를 챙기고, 특별한 상황(가령 윤석열 체포 불발)이 발생할 경우 그때그때 대처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각종 문의에 대해서 응대도 하구요. 현장을 최대한 지키면서 필요한 대응을 하게됩니다.
민변은 참여단체로서 주로 인권침해감시활동, 비상행동 명의의 고소, 고발 등 법률적 대응, 집시법 수사에 대한 대응, 국제활동 등을 지원해왔습니다. 비상행동의 활동으로서는 법률대응 전반, 국제연대활동, 정책기획, 성명 등 입장표명, 인권침해감시활동, 시민참여프로그램 지원 등의 역할을 하였고, 사회대개혁위원회에도 참여하여 개혁과제를 성안하는데 기여했습니다.

암울했던 순간은 참 많았습니다. 탄핵소추안이 부결되었을 때, 체포가 실패했을 때, 서부지방법원에서 폭동이 발생했을 때 등 많은 순간이 있었지만, 가장 암울했던 순간은 윤석열이 구속취소된 이후였던 것 같습니다. 농성에 돌입하고, 매주 선고기일이 잡히길 기다렸는데, 늦어질 수록 점점 암울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특히 회장님을 포함한 공동의장님들의 단식이 길어질 수록 불안해졌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가장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순간은 100만 시민서명캠페인 등 시민들의 참여를 눈으로 목격할 때였던 것 같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서명이 이뤄지는 것을 보았을 때, 순식간에 청사를 리본이 뒤덮었을 때, 그리고 형형색색의 빛이 노래와 함께 어우러질 때 희망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때만큼은 기각도 두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매 순간이 엄중하고 긴박했던 지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와서 돌아보면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재미있는 사건이나, 이제는 밝힐 수 있는 숨겨둔 이야기도 있을 것 같은데요.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광화문에서 집회를 하면 간혹가다가 탄핵반대집회에 참여한 어르신들과 시민들 사이에 다툼이 발생합니다. 어느날 한 어르신이 성조기를 들고 시민들과 시비가 붙는데 세월호참사 유가족 텐트 인근 언덕에서 넘어지셨거든요. 넘어지면서 이어폰을 잃어버렸다고 하셨는데, 세월호참사 유가족들과 주변 시민들이 정말 샅샅이 뒤져서 그 어르신 분께 이어폰을 찾아주셨습니다. 자신을 위해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이어폰까지 찾아준 세월호 유가족들과 주변 시민들을 보던 어르신이 당신이 착각했던 것 같다고, 고맙다며, 앞으로 탄핵반대집회는 안 가겠다고 하시더라구요. 뭔가 좀 감동적이었습니다. 물론 그날 저에게 성조기와 각종 탄핵반대물품을 버려달라고 맡기셔서 저는 일을 더했습니다만, 감동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부담이 아니라면 거짓말이죠. 또 성격은 전혀 다르지만 이태원참사 때 상황실장을 했던 경험이 있어서 더 긴장되고 부담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 공동상황실장을 맡아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력은 동료들이었습니다. 회장님과 총장님의 격려와 지원도 계기가 되었구요. 막상 상황실장을 맡고나서는 상황실 구성원분들께 참 많은 것들을 배우고 힘을 얻었습니다. 특히 산전수전 다 겪으신 선배 상황실장님들의 의연한(?) 대처 등을 보면서 좀 부담을 덜어가며 일을 해나갈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현장에서 가장 힘이되는 말은 비상행동의 활동가들을 응원하는 말이었습니다. 특히 상황이 엄중해져서 활동가들이 혼란스러울 때 “믿는다”, “함께한다”라는 말이 큰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활동을 하면서 고마웠던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남태령, 한남동, 안국동, 명동의 다채로운 풍경속에서 함께 고생했던 활동가분들, 상근자분들, 그리고 회원분들께는 정말 감사하단 말로 부족합니다. 그래도 가장 고마웠던 사람은 12월 3일부터 지금까지 함께 내란 상황에 분노해온 배우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퇴진특별위원회의 활동은 대단했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회원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많은 것들을 이뤄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적 활동도 있었지만, 특히 비상행동과 연계하여 저희의 사업을 좀 더 확장해서 했다는 점도 좋은 평가지점이라 생각합니다. 가령 수많은 고소,고발, 헌법소원 등 기자회견, 법률가대회, 릴레이 시국선언, 변호사행진 등은 민변의 독자적 사업이기도 하면서 연대사업이기도 한데, 비상행동의 전체 사업과도 매끄럽게 연결되어 진행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내란 상황에서 법조계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용인될 수 없는 반헌법적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법기술의 문제, 권력 앞에 당당하지 못한 채 침묵하는 법조인들의 모습, 시민 위에 군림하는 법조엘리트의 문제 등 법조계에 너무나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비상계엄이라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는데 적시에 대응을 하지 못한 사법부의 문제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지켜봐야 성과나 결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탄핵소추가 부결되었을 때에도, 윤석열에 대한 체포가 실패했을 때에도, 헌법재판소 결정이 선고되지 않을 때에도, 헌법재판관이 지명되지 않았을 때에도 시민들의 목소리가 결국 변화를 만들어 냈다는 점이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정말 과분한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란시국에서 진정한 영웅은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수행해가며 시민들과 함께해온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장님, 총장님, 그리고 민변 사무처 사무차장님들, 상근자 분들께 돌아가야할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비상행동이라는 큰 연대체에서 상황실장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업무공백을 덜어주시고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해주신 많은 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며칠밤을 집에 들어오지 않는 저에게 늘 응원을 보내주고, 본인이 더 현장에 나가고 싶었을 텐데 아이와 유튜브 생중계로 집회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제 배우자 류다솔 변호사님께 특히 감사합니다.
한편 회원분들께서 주신 난세영웅상은 민변 상근자가 아닌 비상행동 공동상황실장으로서의 저에게 주신 상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따라서 결국 이 상은 혹독한 시기 내내 묵묵하게 일해온 비상행동 활동가들에게도 돌아가야할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두 번 공동상황실장 역할을 맡아보면서 느낀 것은 우리 모임의 소중함입니다. 함께 모인 여러 단체들에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시민사회의 구성원이면서도 든든한 변호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당당하게 연대활동에 임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어떤 능력 때문이 아니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저는 우리 모임은 이번 내란시기 훌륭한 활동을 했지만, 그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다른 단체들과의, 활동가들과의 협업을 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향후 우리 모임이 법률 전문가로서의 정체성에 너무 몰입하기 보다 시민사회단체의 일원으로서 더욱 다양한 경험과 배움을 통해 성장해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