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기고] 민변 여성인권위원회 7월 월례회 <일본 부동의 성교죄 개정 과정 및 쟁점> 후기 / 김수현 회원
- 2025-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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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게시판

지난 7월 12일, 민변 여성폭력방지팀의 준비로 일본 시민단체 ‘스프링(SPRING)’의 토코 테라마치 변호사님을 모시고 일본의 부동의성교죄 개정 과정과 성과를 공유하는 월례회가 있었습니다. 스프링은 성폭력 피해자의 얼어붙은 마음에 봄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뜻을 담아 2017년 설립되어 일본 형법에 부동의성교죄가 도입될 수 있도록 주도적인 역할을 해 온 단체입니다.
일본은 한국과 같이 폭행 또는 협박을 강간죄의 구성요건으로 하고 있었는데, 2023년 형법 개정을 통해 ‘아래와 같이 열거된 행위1) 또는 사유와 그 밖에 이와 유사한 행위 또는 사유로 인하여 동의하지 아니하는 의사를 형성, 표명 또는 완수하기가 곤란한 상태에 있게 하거나 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성교 등을 한 자’를 처벌하도록 ‘부동의성교등죄’를 도입하였습니다. 부동의성교죄 도입 논의가 있을 당시 일본에서도 반대가 극심했는데, 토코 테라마치 변호사는 부동의성교죄가 도입되기까지 어떠한 반론들이 있었고, 그것을 어떻게 헤쳐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주셨습니다.
1) ①폭행 또는 협박을 사용하는 것 또는 이를 받았을 것. ②심신의 장애를 발생시키는 것 또는 그것이 있을 것 ③알코올 또는 약물을 섭취하게 하는 것 또는 그 영향이 있을 것 ④수면, 그 밖의 의식이 명료하지 않은 상태로 만드는 것 또는 그 상태에 있을 것 ⑤동의하지 않을 의사를 형성, 표명 또는 완수할 틈이 없을 것 ⑥예상과 다른 사태에 직면하여 공포하게 하거나 경악하게 하는 것 또는 그 사태에 직면하여 공포하거나 경악하고 있는 것 ⑦학대에 기인하는 심리적 반응을 발생시키는 것 또는 그것이 있을 것 ⑧경제적 또는 사회적 관계 상의 지위에 기초한 영향력에 의해 받는 불이익을 우려시키는 것 또는 이를 우려하는 것


형법 개정 전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폭행 또는 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한다는 것이 최고재판소의 입장이었고, 그 정도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섣불리 단정하지 않고 유형력을 행사하게 된 경위나 정황, 피해자와의 관계 등 모든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 왔습니다.
검찰이나 법원에서는 이처럼 이미 실무적으로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폭행 또는 협박을 상당히 넓게 인정하고 판단하고 있는데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을 제기하였으나, 폭행 여부 등을 형식적으로만 판단하는 일부 법관들이 존재했고, 2019년경 일본에서 새벽에 편의점을 이용하고 나오는 여성을 강간한 피고인에게 ‘피해자의 소극적인 동의가 있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죄가 없다고 판결하는 등 일반인의 상식선에서 용납할 수 없는 4건의 무죄 판결2) 이 선고되자 위 판결에 분노한 시민들이 2019년 4월 11일부터 매월 11일에 꽃을 들고 광장에 모이는 플라워 데모를 시작했습니다.
2)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7175.html
이와 같이 여론이 형성됨에 따라 어떤 법관에게 재판을 받게 되는지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게 되는 것은 판결에 예측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법으로 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 구성요건을 명확히 하는 것으로 개정의 방향을 잡고 기존의 판례를 분석해 ‘피해자의 동의가 없었다고 간주되는 행위 또는 사유’’를 유형화하여 법 개정을 이뤄낸 것이었습니다.
주요했던 반대 논거를 더 살펴보면, ‘in dubio pro reo(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해야 한다는 것이 형사법의 대원칙인데, 부동의성교죄를 도입하게 되면 가해자가 명백하게 피해자의 부동의를 인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저지른 행위에 대하여도 처벌이 이뤄질 수 있어 이 원칙을 포기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또한, 원래 검사에게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입증책임이 있는 것인데, 부동의성교죄가 도입되면 피고인이 동의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해서 입증 책임을 피고인에게 전가하게 된다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에 피해자의 내심의 의사를 증명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에, 판결을 내리는 입장에서도 피해자가 내심의 어떤 의사를 갖고 있었는지를 인정하기가 곤란해서 되려 무죄가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스프링은 외국 법제를 살펴보고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실태를 조사하였는데, 이미 12개국이 부동의성교죄를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었고, 사실인정의 방법에 대해서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연령이나 성별, 지위, 범행 전후의 모습 등을 고려하여 비동의를 추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동의성교죄로 법이 개정된다고 해서 기존까지의 사실인정 방법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 아니고 기존의 입증방법이나 인정 방법은 다르지 않다는 점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날 민변 여성위 위원인 이경환 변호사가 한국의 비동의강간죄 입법을 위한 그동안의 노력과 향후 전망에 관한 발제를 이어가 주셨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실무적으로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피고인에게 입증책임을 부과할 가능성이 적고, 우리나라는 현행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등이용촬영죄나 스토킹처벌법 등에서 이미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라는 요건을 두고 있지만 입증책임을 전환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기본적 신뢰는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비동의강간죄가 도입된다고 하여 처벌 범위가 극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판단이 피해자의 동의를 중심으로 재정비되어 판단기준에 대한 논의가 깊어지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이경환 변호사님의 의견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비동의강간죄는 처벌대상이 아니었던 행위를 처벌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기 보다는 성폭력 범죄의 판단에 있어 본질적으로당사자의 의사 존중 여부를 고려하여야 한다는 것을 선언하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동의 자체가 요건이 아니어서 그렇게 생각할 기회 자체를 갖지 못하였지만 비동의강간죄 개정으로 상대의 의사를 살피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게 된다면 성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인식이 변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월례회 전에는 비동의강간죄를 법에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실무적으로 어떻게 판단이 이루어질 것인지, 특히 피해자 변호사로서 피해자에게 불이익해질 우려는 없을지 복잡한 심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부동의성교죄 도입 전의 일본의 상황이나 제기된 반론의 양상이 현재 우리나라가 직면한 문제와 다르지 않았고, 일본의 경우 법 개정 이후 이전에는 신고조차 하지 못했던 피해자들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게 된 상황이라고 전해 듣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일본의 경우 2017년 형법 개정 당시에는 의견이 일치되지 않아 부동의성교죄가 도입되지 못하였지만 향후 논의를 계속하여야 한다는 부칙을 두었는데, 스프링을 비롯해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들이 판례를 연구해 공통 의견을 내고 일본 법무성이 검토회를 다수 구성하여 논의를 이어 가는 과정에서 분노한 시민들이 광장에 나와 여론이 형성되면서 결국 2023년 법 개정이 이뤄진 것을 보며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한국에서도 20대 국회에서 여야 불문하고 10개의 비동의강간죄 입법안이 발의되었다가 충분한 논의 없이 전부 폐기되었으나 다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만큼, 민변에서 비동의강간죄의 정책적 진전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비동의강간죄 도입과 관련하여 처벌에 대한 우려로 상대방의 동의를 입증하기 위해 녹음을 해야 한다거나, 앱으로 동의 여부를 체크하겠다는 등의 과도한 방식이 거론되는 상황이 우려되기는 합니다. 특히 동의 여부에 대한 입증책임이 피고인에게 있는 것이 아님에도 성범죄자 선처 패키지와 같이 변호사 시장에서 동의를 입증하기 위한 자료가 하나의 상품처럼 운용될 가능성 또한 간과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고 입법 기술적으로도 문제들이 남아있지만 시대적 흐름에 맞춰 비동의강간죄 도입이 논의되는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가 상대방의 의사를 어떻게 확인하고,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 그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회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