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원회][논평] 아리셀 대표이사 박순관 등에 대한 형사재판 1심 선고 논평 - 23명의 죽음 앞에 형량이 아쉽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를 명확히 확인한 판결이다.

  • 202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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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아리셀 대표이사 박순관 등에 대한 형사재판 1심 선고 논평 - 23명의 죽음 앞에 형량이 아쉽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를 명확히 확인한 판결이다.


 

어제(9. 23.), 수원지방법원 형사 제14부(재판장 고권홍 부장판사)는 2024. 6. 24. 발생한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와 관련하여, 아리셀 대표이사 박순관과 운영총괄본부장 박중언에게 각각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이래 최고 형량이다. 그러나 23명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된 점, 기업의 무분별한 이윤 추구가 초래한 살인에 가까운 명백한 인재(人災)였음을 고려하면, 그 죄책에 비하여 형량이 여전히 가볍다.

 

피고인들은 ‘이 사건 화재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전해액을 주입하고 시간이 지난 리튬 1차 전지가 폭발하고 화재가 발생한 것이 이례적이어서 예견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해당 주장을 배척했다. 재판부는 사고 현장이 전소한 대형 화재의 경우 그 원인을 알기 쉽지 않으나, 여러 실험 결과를 통해 제조상 결함으로 인한 내부 단락으로 인한 것이 화재의 원인이라고 지목했으며, 이 사건 화재와 사상 결과에 대한 예견 가능성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피고인들은 과거 네 차례 있었던 사고들을 통해 전해액 주입 이후 다소 시간이 지나도 전지가 폭발할 수 있음을 알고 있으며, 관계 기관의 안정성 지적, 동종업체의 폭발 사고를 인지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보았다. 국내 리튬 1차 전지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현실을 지적하며, 그렇다면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생산업체가 그 위험성을 인식했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는데, 기업이 현실적 여건을 핑계로 안전을 도외시 하는 현실에 비추었을 때 매우 의미 있는 지적이다.

 

또 피고인들은 주의의무가 없었고, 주의의무 위반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사고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① 전지 보관시 열감지기를 설치하여 발열검사를 실시하지 않은 점, ② 2024. 6. 22. 전지 폭발 사고가 있었음에도, 같은 시기에 생산된 전지들에 대한 후속공정을 중단하거나 해당 전지들을 분리조치 하지 않은 점, ③ 파견근로자들에 대한 안전보건교육, 정규직 및 파견근로자들에 대한 소방훈련 등을 실시하지 않은 점, ④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성평가를 실시하지 않은 점, ⑤ 위험물질을 취급하는 작업장이 있는 건축물에 설치하여야 하는 비상구나 비상통로를 노동자들이 이용하기 어렵게 하여 화재 시 노동자들이 대피하지 못한 점 등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하였고, 이러한 주의의무 위반이 피해자들을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고 판단하였다.

 

피고인들은 대표이사(CEO)인 박순관이 아닌 대표이사의 아들이자 운영총괄본부장(COO)인 박중언이 경영책임자라고 주장하였지만, 재판부는 박순관을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로 인정했다. 박순관은 명목상 대표이사가 아니라, 상시 보고를 받았고 의견 개진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지시•감독을 했다고 보았다. 또한, 박순관이 주간 업무 보고를 채권자 지위에서 파악한 것이라거나, 아버지로서의 조언이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일축했다. 재판부는 대표이사가 타인에게 대부분의 일상적 업무를 위임하면서도 중요사항만 위임하지 않은 경우, 대표이사에 준하는 안전보건업무책임자 존재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았고, 이런 운영 형태에서 대표이사가 경영책임자가 아니라고 하면 결정권한이 있는 대표이사가 안전보건시스템을 구축하게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취지가 몰각된다고 판시하였다. 최근 기업들이 안전보건책임자(CSO)를 선임하여 대표이사가 중대재해처벌법의 의무를 면책하도록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본 판결에서 안전보건책임자(CSO)가 안전보건사항에 대해 대표이사 만큼의 권한이 없다면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의 지위가 인정되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중대재해처벌법상 사업총괄자의 지위를 가지지는 않는다고 판단한 바, 안전보건책임자(CSO)를 두어 책임을 피하는 관행에 다소 제동을 건 점은 의미가 있다.

 

재판부는 선고 당시 “CCTV에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전지를 등 뒤에 두고, 막다른 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무척 위험해보였습니다. 이것이 피고인들이 느꼈어야 하는 불안감이고 이걸 방치한 것이 안전불감증입니다. 피고인들 가족이 그 작업장에 앉아서 작업했더라면 그런 불안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게 위험에 대비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안전보건상 주의의무입니다.”라며 이번 사고가 예상 못한 사고가 아니라,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인재였다고 강조했다. 이윤극대화를 앞세워 노동자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는 산업 현실과 불안정 노동자의 현실이 참사의 이면에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아리셀이 납품 기일을 맞추기 위해 급격히 생산량을 늘리면서 불법 파견을 이용했고, 이것이 제조상 결함으로 이어진 것이라 진단했다. 사망자 23명 중 20명이 파견노동자, 18명이 이주노동자였는데, 안전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으며, 파견노동자는 평소 출입할 수 없도록 보안장치가 있는 통로에 비상구가 있어 탈출이 더욱 어려웠다는 점을 엄중하게 다뤘다. 이는 불안정 노동이 산업안전에 미치는 영향, 특히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정확하게 진단한 것으로 평가된다.

 

재판부는 과거 산업재해로 노동자가 사망한 경우, 과실범에게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량이 선고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로 인해 형벌의 일반 예방 효과가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다수인 점, 피고인들의 심각한 주의의무 위반으로 인해 참혹한 결과가 발생한 점을 들어 과실범에 준해 가볍게 취급할 수 없다며 중형을 선고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일부 유족과 합의한 사실은 인정하였지만, 합의가 망인의 의사를 대체할 수 없으며, 민형사 소송에 대한 부담과 생계에 대한 압박으로 합의한 유족의 상황에 비추어 합의 사실은 일부 제한적으로만 양형사유로 고려한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기업이 중대재해 발생 후 유족과 합의했다는 이유만으로 선처를 받는 관행에 대해 "이러한 악순환을 뿌리 뽑지 않는 한 산업재해 발생률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재판부는 기업이 막대한 자금력으로 합의금을 지급하여 형을 감경받고, 오히려 산업안전에 자금을 투여하지 않는 현실을 지적했는데, 해당 관행에 경종을 울리는 의미 있는 판단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단순히 현장 관리자가 아닌, 실제 안전시스템을 총괄하고 예산을 배정하는 최고의사결정권자인 경영책임자에게 기업 전체의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 의무를 부과하며, 산업재해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지금까지 유족과의 합의를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을 반복해왔다. 최근 국회 입법조사처는 ‘중대재해처벌등에 관한 법률의 입법영향 분석’ 보고서를 통해, 법 시행 후 산업재해로 죽거나 다친 사람이 법 시행 전보다 유의미하게 감소하지 않은 원인 중 하나로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을 꼽았다.

 

재판부는 현장 실무자가 아닌, 최고 경영진에게 중대하고 직접적인 책임을 물음으로써, 기업이 이윤 추구보다 노동자의 안전을 최우선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를 제대로 구현한 판결로 평가한다. 특히 불법파견과 불안정 노동의 확산이 산업안전에 주는 영향을 정확히 진단한 점, 특히 이주노동자가 처한 현실을 구체적으로 판단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미 사라진 23개의 세계는 돌아오지 않고,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의 고통을 완전히 치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을 계기로 기업은 안전을 위한 투자를 비용으로 인식하는 구태의연한 경영 방식을 버리고, 산업재해 예방 시스템 구축에 힘써야 할 것이다. 또 정부와 국회는 불법파견과 같이 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이번 판결이 우리사회가 다시는 이와 같은 참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하며, 우리 위원회는 중대재해 없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다.

 
2025년 9월 24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위원장 신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