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인권위][성명] 정신건강 위기당사자의 현실과 법 취지를 외면한 ‘주간형 동료지원쉼터’ 시행규칙 제정을 중단하라

  • 2025-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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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인권위][성명]


정신건강 위기당사자의 현실과 법 취지를 외면한
‘주간형 동료지원쉼터’ 시행규칙 제정을 중단하라


 

보건복지부는 최근 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에서 동료지원쉼터를 ‘종일형’뿐만 아니라 ‘주간형’을 추가하는 안을 입법예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시행규칙개정안은 정신건강 위기당사자가 실제로 마주하는 위험과 필요를 외면하고, ‘지역사회에서의 안전한 회복’이라는 정신건강복지법의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 우리 위원회는 이러한 개악에 반대하며, 지금이라도 보건복지부가 이번 개정안을 철회하기를 요구한다.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시행규칙안은 동료지원쉼터를 ‘종일형(24시간 체류형)’과 ‘주간형(낮 시간 프로그램형)’으로 구분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모법인 「정신건강복지법」 제69조의4가 정한 ‘임시보호’의 본질적 기능을 축소·변형한 것이다. 이는 법률이 위임하지 않은 사항을 시행규칙으로 새로이 규정한 것으로서 위임입법의 한계를 넘어선 것으로 위법하며, 동료지원쉼터제도가 지향해 온 지역사회 기반 위기대응체계의 취지를 형해화하고 그 실질적 기능을 무력화한다.

 

정신건강복지법 제69조의4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일시적 정신건강 위기를 겪는 정신질환자등을 임시로 보호하면서 상담 등을 제공하는 동료지원쉼터를 설치·운영할 수 있다”라고 명시한다. 정신건강복지법이 예정한 ‘임시보호’는 단순한 프로그램 참여가 아니라, 위기상황에 처한 사람이 일정 기간 머물며 신체적·정신적 안정을 회복할 수 있는 24시간 체류형 보호조치를 전제로 한다. 법률은 이미 ‘임시보호’의 내용과 목적을 직접 규정하고 있으며, 운영 및 인력기준 등 세부사항만을 보건복지부령으로 위임하였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시행규칙을 통해 임시보호의 본질적 형태인 24시간 체류형 쉼터를 ‘주간형’으로 변경해 법률의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

 

정신건강 위기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극심한 불안, 공황, 자해 충동 등 위기상황은 특히 야간과 심야에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러나 쉼터가 ‘주간형’으로만 운영된다면, 당사자는 위기가 가장 심화되는 시간대에 머물 곳도,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이 다시 병원이나 격리시설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동료지원쉼터는 이러한 병원 및 시설 중심의 위기대응체계를 넘어 당사자가 며칠 동안 안전하게 머물며 신체적·정신적 안정을 되찾고, 회복을 준비할 수 있는 24시간 체류형 보호공간으로 설계된 제도이다. 그러나, ‘주간형 쉼터’는 이러한 입법취지를 실현하기 어려우며, 법이 보장하려 한 지역사회 기반 위기대응체계의 기능을 담당할 수 없다. 

 

국제적으로 지역사회 기반 위기대응시설은 모두 24시간 접근 가능한 체계(24/7 access)를 원칙으로 한다. 미국의 동료운영 위기쉼터(Peer-run Respite Center), 영국의 위기하우스(Crisis House), 호주의 단계적 회복지원시설(Step-up/Step-down 모델) 등은 모두 병원 입원을 대체하는 단기 거주형 시설로서, 상시 인력(24시간 근무체계)을 갖추고 있다. 해당 국가들은 이미 지역사회 내 위기대응체계를 입원 대체형·24시간 체류형으로 설계하여, 정신건강 위기 당사자가 밤에도 안전하게 머물며 회복할 수 있는 구조를 제도화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정신건강정책 및 서비스 지침 패키지: 위기서비스」(2018)에서 “언제든 접근 가능한 지역사회 기반 위기대응체계(24/7 access)” 구축을 권고하고 있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 제14조와 제19조는 정신적 장애를 이유로 한 자유의 박탈을 금지하고, 지역사회 내에서 안전한 공간에 머물 수 있는 실질적 선택의 자유와 접근성을 국가가 보장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시행규칙이 예정하는 ‘주간형 쉼터’는 이러한 국제기준— 24시간 접근 가능성, 지역사회 내 보호, 당사자의 선택권 보장—에도 정면으로 위반된다. 이는 위기당사자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제도 설계이자, 국제적 기준에 역행하는 퇴행적 행정입법이다.

 

보건복지부는 법이 부여하지 않은 권한으로 제도의 본질을 왜곡한 책임을 직시해야 한다. 당사자의 현실과 경험에 근거하지 않은 제도 설계는 법이 보장한 권리의 내용을 침해하고, 위기당사자를 다시 배제의 경계로 몰아넣는 것이다. 정부는 법률의 취지와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24시간 체류형 보호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 국가의 책무이며, 헌법과 국제인권법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책임이다.

보건복지부는 즉각 시행규칙 제정을 중단하고, ‘주간형 쉼터’ 조항을 철회하라.

 
2025. 10. 23.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