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기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제2회 부산민변영화제 / 정상규 회원
- 2025-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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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제2회 부산민변영화제
- 정상규 회원
(※ 경고 : 이 ‘영화제 후기’에는 영화의 결말을 포함한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변호사 단체에서 뜬금없이 영화제를 연다고?” 이것은 부산지부가 2023년 처음으로 ‘부산민변영화제’를 개최한다고 했을 때 대다수의 사람들이 보인 솔직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법정을 드나들며 글과 말로 하는 변론으로 세상을 바꿔야 할 ‘민변 변호사’들이 굳이 영화제라? 회원인 나조차도 이런 의구심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 부산은 영화의 도시다. 영도(映都)에서 활동하는 민변 변호사들이 법률가의 관점에서 인권을 바로 바라보는 괜찮은 영화를 선정해보자.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 시민들을 초대해서 소통하는 자리를 만들어보자. 과정이야 힘들겠지만 새로운 시도를 한번 해보자. 이렇게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제2회 영화제를 마친 지금에서야 새삼 괜찮은 시도였다고 느낀다. 1회 영화제의 상영작들은 ‘장애’를 주제로 한 두 편의 영화였다. 한편은 대중성 있는 영화 ‘증인’(2019)을, 다른 한편은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가는 길’(2021)을 선정했다. ‘증인’의 주인공 정우성을 부르자는 욕망도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참고로 필자는 1회 영화제 스탭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회성 행사로 그치지 말고 주제로 삼은 ‘장애’와 관련된 후속 활동을 해보자는 기획도 했다.
2년 만에 준비한 2회 영화제의 주제는 ‘해외 입양’이다. 부산지부 사무국장을 맡은 필자가 자연스럽게(?) 영화제 ‘연출’을 맡게 되었다. 부산지부 소수자위원회 모임에서 함께 본 조세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케이넘버’(2025)가 인상 깊어 우리끼리만 보기에 아깝다는 회원들의 평이 많았다.
때마침 부산지부 회원들은 1960~70년대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건인 영화숙, 재생원,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국가배상소송을 대리하고 있었는데, 이들과 ‘케이넘버’의 주인공들은 국가 주도하에 사설 기관에 내팽개쳐졌다는 점에서 닮은 꼴이었다. 1960~70년대 거리에서 발견된 남루한 차림의 어떤 유아는 영화숙이나 아동보호소로, 어떤 이는 해외로 보내졌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자신이 부모로부터 버려진 것인지, 단순히 길을 잃었던 것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우리는 ‘케이넘버’를 시민들과 함께 보기로 하며, 제2회 부산민변영화제의 캐치프레이즈를 ‘K-입양, 우리가 외면한 진실’로 정했다. 영화제 포스터도 만들었다. 이주희 간사의 숨겨진 재능이 빛을 발했다. 영화 상영 후 진행할 관객과의 대화에 조세영 감독과 영화에 출연한 김민정 배냇 활동가를 초청했다.
두 번째로 선정하는 영화는 여러 편이 물망에 올랐지만, 비교적 가볍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고르자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실사, 사료 영상을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구성한 융 전정식(벨기에 명 : 융 헤닌) 감독의 영화 ‘피부색깔=꿀색’(2014)을 본 뒤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애니메이션이 들어간다고 해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태어나 5살 언저리에 벨기에로 입양된 융 감독의 자전적 영화이다. 벨기에에 거주하는 융 감독을 부산으로 초대하기는 어려워 융 감독의 영상 인터뷰를 받아 영화 상영 후에 관객들에게 선보이기로 했다.
영화제 당일. 윤재철 부산지부장님의 개회사, 윤복남 회장님의 축사에 이어, 민변 부산지부의 역사와 현재를 보여주는 영상을 선보였다. 오희도, 정주형 두 회원의 피, 땀, 눈물로 만든 영상이다. 이어 1회 주제 ‘장애’에 관하여 지난 2년간 회원들이 해온 활동을 소개하는 이주언 회원의 발표까지, 20분 안에 끊었다. (다시 말하지만, 필자가 연출자다.)
첫 상영작 ‘피부색깔=꿀색’. 영화는 1950년대 후반 전후 한국, 홀트 아동복지회의 복지사업에 관한 사료 영상으로 출발한다. 감독이자 주인공인 융은 5살이던 1971년 얼굴의 멍 자국 때문에 미국이나 호주가 아닌 벨기에로 입양된다. 이미 네 자녀가 있는 양부모에게 입양된 융에게 얼마 후 입양된 한국인 여동생이 생긴다. 융은 자신의 뿌리지만 자신을 버린 한국에 대한 적대감으로 한국 출신 입양아들을 멀리한다. 일본 문화에 심취해 자신이 일본인이라고 거의 믿는다. 학교 선생님, 심지어 양조모로부터도 차별당한다. 하지만 가장 폭력적인 순간은, 자신이 친구의 식권을 훔친 사건 뒤 양모로부터 “썩은 사과 같은니, 주위 사과까지 다 썩게 만들게 뻔해. 우리 애들과 가까이 지내지마.”라는 말을 들었을 때다.
융은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통해 상상 속의 생모를 만난다. 일종의 도피처다. 하지만 자신이 생모로부터 버려진 것이 아닐까, 악몽을 꾸곤 한다. 한국을 찾은 40대의 융은 묻는다. “한국 사람들은 나를 한국인으로 볼까?” 자신이 입양되던 당시의 자료를 찾는다. 전정식이라는 이름, 생일, 경찰이 시장에서 그를 데려온 이유. 아무것도 분명한 것이 없다.
성장하며 양부모와 마찰이 커간 융은 가출해 교회에서 산다. 심신이 지쳐 응급실로 간 융을 양모가 찾아와 집으로 함께 간다. 그리고 양모는 누구에게도 하지 않은 고백을 융에게 한다. “난 마음 속으로 널 유산한 첫째 대신으로 생각했단다.” 융은 그제서야 자신이 썩은 사과가 아니었다는 걸 안다.
융은 죄책감에 나보다 더 힘들었을 친모를 만난다면 “원망 안한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상상 속의 친모를 사랑할 순 없고, 현실에 존재하는 양모만이 자신의 엄마라는 현실 직시를 한다. 융의 고향은 ‘여기’기도, ‘거기’기도 하다. 융은 “서양인이면서 동양인이고, 유럽인이면서 아시아인이며, 백인도 흑인도 아닌 내 피부 색깔은 꿀색”이라고 말하며 영화의 막을 내린다.
이어진 인터뷰에서 융 감독은 버려짐, 정체성 상실의 트라우마, 하지만 화해와 자기 수용으로 향하는 자신의 긴 여정을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버림받은 상처가 우리를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몰진 않는다고 말한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자기 회복의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작품이 입양 이야기를 더 잘 이해 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두 번째 상영작 ‘케이넘버’. 주인공 중 한 명인 메리 쉬라프만은 2004년 처음 찾은 대한사회복지회에서 자신이 입양되던 당시 정보가 담긴 자료를 요구하지만, 이름과 보육원 이름밖에 줄 수 없다는 답을 듣는다. 대한사회복지회는 그 자료가 기관 기록물이라 줄 수 없다고도 말한다. 2019년 홀트아동복지회도 마찬가지다. 1960~70년대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해외로 입양된 사람들에게는 ‘K-Number’가 매겨졌다. 메리는 이 일련번호에서 보스턴 홀로코스트 추모비에 새겨진 셀 수 없는 일련번호를 떠올린다. 학살당한 사람들의 일련번호다.
또 다른 주인공 미오카(김미옥)는 2023년 친생 가족을 찾기 위해 미국에서 네 번째로 한국을 찾았다. 미오카가 간직하고 있는 건 위탁모가 입양 보내기 전에 나중에 자기를 찾으라며 건네준 자신의 사진뿐이다. 미오카는 미국인 양모로부터 한 번도 사랑을 느껴보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양모는 18살이 된 미오카를 집에서 쫓아냈다. 그는 밤낮으로 일해서 번 돈으로 미용 수업을 받아 미용사가 되었다.
네 번째로 찾은 한국에서 서울시립아동보호소의 수용아동접수부를 처음 입수했다. 하지만 입소의뢰처 정보는 ‘상동’이라는 표시만 있고, 그 위에 자료는 가려져 있다. 입소 전 주소도 ‘독쟁이’라고만 적혀있다. 비슷한 지역 이름을 찾아가지만 별 소득이 없다. 충격적인 것은 미오카에게는 미국 국적도 없다는 것이다. 양부모가 작성 중이던 귀화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도 미국도 그의 나라가 아니다. 미국으로 입양 간 이들 중 2만명 가량이 불법체류자다. 가려졌던 입소의뢰처 정보를 추가로 제공 받은 미오카는 다섯 번째 한국 방문을 준비 중이다.
박정희 정권은 고아가 아닌 아동들에게 고아 호적을 가짜로 만들었다. 1970년대부터 급증한 해외 입양인 수는 20만 명을 넘는다. 한국이 2013년 서명한 헤이그 아동입양협약은 12년이 지나서야 비준, 발효되었다. 한국 정부는 헤이그 협약에 따라 2025년부터 입양기록물을 직접 관리하기 시작했지만, 보관장소가 없다는 이유로 택배회사 냉동창고를 사용 중이다. 곧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는 한국은 2020년 기준 해외 입양 송출국 3위를 기록 중이라는 글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지난 2025년 3월 26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가 해외 입양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하였다. 하지만 과거사위는 입양 시스템을 운영한 국가의 구조적 책임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 국가 주도의 입양정책이 불러온 인권침해의 본질을 흐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피해자 개개인의 실질적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다.
필자는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여러 차례 두 영화를 봤지만, 볼 때마다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한 관객은 영화를 보다가 너무 많이 울어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는 피드백을 보내왔다. 하지만 두 편의 영화는 긍정적이고자 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조세영 감독님은 변호사이자 GV 진행자인 임예지 회원이 던지는 질문이 어떤 영화제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었다는 유쾌한 후기를 전해왔다.
마무리. 1회 영화제 때는 ‘민변’이 하니까 와서 함께 봐달라는 무언의 몸짓이 있었으리라. 하지만 2회부터는 ‘민변’이라는 이름을 가리고, 영화가 너무 좋으니 와서 보시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 면에서 ‘케이넘버’, ‘피부색깔=꿀색’이라는 정말 잘 만든 영화를 선정했다고 생각한다.
두 차례 연 부산민변영화제의 공통 슬로건은 ‘평등한 세상을 향하여’다. 앞선 주제였던 장애, 해외 입양 그리고 앞으로 함께 고민할 노동, 소수자, 여성, 아동, 환경, 에너지, 평화, 교육, 정보, 문화 그리고 많은 이슈들에서 시민이 가지는 권리를 고르게 나누자. 그러한 세상을 꿈꾸는 변호사들이 ‘영화’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다시 연다면, 그곳에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