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기고] <민변 2025년 베트남 평화기행 후기> 승소 판결문과 함께! 10년만에 다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지역으로 / 임재성 회원

  • 2025-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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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2025년 베트남 평화기행 후기>

승소 판결문과 함께!

10년만에 다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지역으로

- 임재성 회원

  1. 전사 : 2015년 1차 평화기행부터 시작된 ‘새로운’ 흐름 2015년, 민변 국제연대위와 과거사위가 공동으로 준비한 첫 번째 베트남 평화기행을 10여 명의 민변 회원들이 다녀왔습니다.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피해자분들이 최초로 한국을 방문하였던 2015년, 민변 회원들은 피해자들의 방한을 목도하면서 ‘무언가 해야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으로 베트남을 찾았던 것이죠. 저 역시 ‘이번 여름 휴정기에 베트남전 학살 피해지역에 방문할 사람을 모은다’라는 민변 메일을 받고 홀린 듯이 답장을 했고, 1주일 간의 기행을 함께했습니다. 기행에 참가한 회원들은 ‘한 번 여행으로 끝낼 수는 없다’며 세미나를 시작했고, 2017년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TF(이하 ‘TF’)를 만들었으며, 2018년 시민평화법정을 성대하게 치러냈습니다. 그땐 몰랐죠. 베트남과 함께 10년이 지나갈 줄.  

<2018년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실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 3일 중 마지막 날>

  돌이켜보면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운동의 제2라운드의 시작이었고, 그 새로운 흐름에 TF를 중심으로 한 민변 회원들이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①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사건 중 하나인 퐁니 학살 사건 피해자 1인이 원고가 되어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하였고 TF는 피해자를 대리하였습니다. 2023년 1심, 2025년 2심 모두에서 원고 승소판결이 선고되었지요. 베트남전과 관련해 세계사적으로 피해자가 참전국을 상대로 참전국 법원에 제기한 최초의 소송이자 최초의 판결이었습니다. ② 또 다른 학살 사건 중 하나인 하미 사건의 경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을 한 이후, 그 신청이 각하되자 행정소송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국가배상소송이 ‘진실을 인정하라’라는 소송이라면, 행정소송은 ‘진실을 규명하라’라는 소송입니다. 퐁니와 다르게 하미의 경우 안타깝게도 ‘외국인에 대해서는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의무가 없다’라며 피해자의 호소를 외면하는 판단이 1, 2심 모두에서 나왔습니다. 퐁니와 하미 사건 모두 현재 모두 대법원에서 심리 중에 있습니다. 또한 TF는 ③ 진실규명을 위한 독립적 기구설치를 내용으로 하는 특벌법을 20, 21, 22대 국회에서 연속적으로 발의하는 과정 및, ④ 국가정보원을 상대로 정보공개 관련 소송을 제기하여 끝내 정보를 획득하는 과정을 주도했습니다. 2015년부터 시작된 민변의 활동은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관련해 많은 역사적 성과를, 분명한 진전을 만들어냈습니다. 10년이 지난 2025년, TF는 다시 한번 베트남 학살지역과 피해자들을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지금까지의 활동을 이끌어왔던 회원들뿐만 아니라, 새롭게 참여한 회원들도 함께였습니다. 1차 기행이 ‘몰랐던 것을 알기 위한 기행’이었다면, 2차 기행은 ‘조금 더 깊게 보고 듣고, 묻기 위한 기행’이었습니다.   2. 새로운 사이클을 위한 두번째 평화기행, 퐁니 마을과 하미 마을 방문 민변 회원 및 언론인, 연구자들 15여 명은 2025. 7. 두 차례의 사전 세미나를 바탕으로 하여 같은 달 28.부터 2025. 8. 1.까지 베트남 중부 꽝남성(다낭시 등), 꽝응아이성에서 2번째 민변 베트남 평화기행을 진행하였습니다. 7월 28일 첫날 오후에는 다낭시 관계자들을 만났고, 저녁에는 베트남 주다낭 대한민국 총영사관 관계자분과 식사를 나누며 베트남과 다낭 지역의 여러 경제·사회적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정보를 얻는 자리이기도 했지만, 그분들에게 ‘우린 학살 피해자들과 연대하며 한국에서 이런 활동을 하고 있는 변호사들이고, 한국에선 이런 논의가 있으며, 이런 변화를 희망한다’라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둘째 날인 29일부터는 본격적으로 학살지역에 방문해 피해자분들을 만났습니다. 먼저 퐁니 마을(1968. 2. 12. 70여명 민간인학살 지역)을 방문하였습니다. 국가배상소송의 원고 응우옌티탄과 2022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당시 학살을 증언해주신 응우옌득쩌이 두 분과 반갑게 인사했고, 함께 위령비로 가서 참배를 하였습니다. 2004년 세워진 위령비의 앞 비석은 “베트남 민간인들이 남조선 군인들에 의하여 68년 2월 12일에 학살되었다”라는 서늘한 문구가, 뒷 비석에는 퐁니·퐁넛 마을에서 학살된 이들의 이름과 출생연도, 당시 주거 마을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위령비가 위치한 곳은 퐁니 마을 입구에 가장 큰 야유나무가 있는 곳으로, 학살 당시에 많은 시신이 놓였던 곳이었습니다. 기행단은 30분 정도 찬찬히 묵념을 하고, 위령비를 읽고 만지고 각자의 방식으로 기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TF 활동을 하며 지난 수년간 이 위령비에 대한 이야기를 법정에서, 강좌에서, 또 세미나 등의 자리에서 수십 번쯤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공간이 슬프고, 죄스럽고, 또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울먹이는 마음으로 여기 새겨진 분들의 억울함이 그래도 10년 전보다는 조금은 풀리셨기를 바랐습니다.  

<2025년 민변 베트남 평화기행 2일차, 퐁니 학살 위령비 앞>

  직후 평화기행단은 하미 마을(1968. 2. 22. 130여명 민간인학살 지역)에 방문하였습니다. 행정소송의 원고이신 하미 마을학살의 피해자 응우옌티탄(퐁니 마을과 동명이인) 및 하미 마을 유족회 회장과 함께 위령비를 살펴보았습니다. 하미 마을의 위령비 뒷면은 연꽃무늬 대리석으로 가려진 것으로 유명합니다. 하미 마을 위령비는 2000년 한국군 참전자단체의 지원으로 설립이 시작되었는데, 학살 사실관계를 담은 내용이 위령비 뒷면에 새겨진 것을 두고 비용을 일부 지원했던 참전자단체, 주베트남 한국 대사관 직원 등의 압박이 이어졌습니다. ‘불편하다’는 것이었지요. 그 압박 속 하미 마을 사람들은 ‘비문을 지울 수는 없다. 다시 여는 날이 오길 바라겠다’라며 연꽃무늬 대리석으로 비문을 덮었고, 현재까지 안타까운 ‘가림’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하미의 응우옌티탄은 위령비 앞에서 ‘이건 모순이다. 하미에서 죽은 사람들의 이름과 나이는 위령비에 있지만, 정작 누구에 의해 왜 죽었는지가 없다. 연꽃무니 대리석을 열어야 한다’라고 호소하였지만, 유족회 회장의 입장은 조금 달랐습니다. ‘그건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다. 베트남 정부와 한국 정부의 일이고, 그것에 대해 우리의 입장을 가지는 것은 어렵다.’ 깊게 듣고 묻는 기행이니만큼 위령비 앞에서 참가자들은 조금 더 물었습니다. 같은 피해자이고 유족이지만, 한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응우옌티탄의 선명한 요구와 현지 유족회장의 침묵 사이 ‘팽팽한 평행선’은 베트남전 민간인학살을 넘어 베트남 사회의 여러 구조와 현실을 담고 있는 단면이었습니다.  

<2025년 민변 베트남 평화기행 2일차, 연꽃무늬 대리석으로 덮혀있는 하미 학살 위령비 뒷면>

  이후 기행단은 두 응우옌티탄과 함께 점심식사를 한 이후 조용한 카페로 이동해 2시간 넘게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운동의 과정’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미 응우옌티탄은 ‘퐁니 학살에 비해 증거가 부족하기에 불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 변호사들의 도움으로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지고 있다. 도전해보고 싶다’라는 의지와 함께 ‘베트남정부에게는 나는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나 같은 피해자에게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라며 베트남 정부에 대한 아쉬움도 털어놓았습니다. 퐁니 응우옌티탄은 ‘변호사들을 만나면서 마을 공동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이야기하고 싶다’며 피해공동체 중 유일하게 소송을 제기한 자로서 감당할 수밖에 없는 여러 사건과 감정들을 토로하셨습니다. 특히 몇몇 사람들에게 “이 소송을 왜 집단적으로 하지 않았나, 집단의 이름으로 하지 않았냐는 질문”을 받고 있는데, 이에 대한 답변이 어렵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노력한다고 했지만 대리인단과의 소통이 더욱 필요하구나 싶었습니다.  

<2025년 민변 베트남 평화기행 2일차, 두 응우옌티탄과의 간담회 직후 카페 앞에서>

  3. 소송을 희망하는 빈호아 학살 피해자, 학살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다낭외국어대 한국어학과 학생들 셋째 날인 30일에는 보다 남쪽의 꽝응아이성으로 이동했습니다. 그 곳 빈호아 마을에 서있는 ‘한국군 증오비’에 추모를 하였고, 피해자 한 분과 목격자 한 분을 모시고 현장에서 설명을 듣고, 점심을 나누며 말씀을 들었습니다. 목격자는 “전쟁은 지진 같은 거다”라며 민간인학살도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처럼 불가항력적인 무엇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는 달랐습니다. 도안응이아는 학살 때인 1살 때 눈과 가족을 잃었고, 이후 마을 주민들의 도움으로 생존할 수 있었던 분입니다. 그 분은 ‘한국 사람들의 방문으로 마음을 많이 풀었지만 억울하고 분하다. 퐁니 판결을 알고 있다, 소송을 하고 싶다, 경제적으로 보상을 받고 싶다’라고 하셨습니다.  

<2025년 민변 베트남 평화기행 3일차, 빈호아 마을 한국군 증오비>

 

<2025년 민변 베트남 평화기행 3일차, 빈호아 마을 피해자와 함께>

  이후 기행단은 베트남전 시기 민간인학살 사건 중 유일하게 정부의 기념·추모시설이 운영되고 있는 손미(미라이) 학살 박물관에 방문해 관장과 면담을 하였고, 박물관 시설을 긴 시간 차분하게 살폈습니다. 베트남전 시기 민간인학살 사건 중 유일하게 ‘미라이 학살’만 상당한 규모를 가진 공적 기념 시설로 추모되고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이는 당시 세계사적인 ‘냉전구조’였습니다. 박물관 관장은 “냉전을 기억하라. 미라이를 기억하라”라는 학살 직후의 슬로건을 들려주었는데, 냉전 대립 구도 속에서 ‘미라이 학살’은 냉전의 적대를 고취하는데 적극 활용되었던 것입니다. 미군 역시 많은 민간인학살을 자행했을 테지만, 그 중 LIFE 잡지 기자의 사진을 통해 미국 내에서 반전 여론을 촉발했던 것이 미라이 학살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그 이유로 종전 직후인 1976년부터 베트남 정부가 이를 적극 활용한 것이죠. 비극적이지만 ‘기억되는 죽음’에는 정치가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기행단은 박물관장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미국 정부을 상대로 소송을 한 적이 있나?” “없다.” “책임을 묻는 활동 계획있냐?” “없다. 예전에는 베트남 정부가 피해자를 선발해 사회주의권 국가들을 다니며 증언활동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아니다. 책임을 물으려면 베트남 정부가 해야한다고 본다.” 넷째 날인 31일 저녁에는 다낭 외국어대학교 한국학과 학생들과 평화기행 참가자들이 교류하는 시간을 3시간 넘게 보냈습니다. 학살은 과거에 벌어진 일이지만, 그 학살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서는 후대의 조력자들이 필요합니다. 가해국에게 전쟁범죄의 책임을 묻기 위한 제도적 조력을 하는 한국의 변호사들과 베트남에서 한국 시민들과 학살 피해자들을 언어적으로 연결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당신은 왜 이것을 하고 있는가’, ‘어떤 변화를 희망하는가’, ‘어떤 어려움을 마주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한국어’로 나누었습니다.  

<2025년 민변 베트남 평화기행 4일차, 다낭 외국어대학교 한국학과 학생들과의 간담회>

  4. 마치며 오랜 시간 TF 활동을 해왔던 이들은 다시 한 번 몸과 마음으로 현장을 느꼈습니다. 그 현장에서 피해자들과 소통하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했습니다. 새롭게 참여하신 분들은 ‘10년의 무게’가 무겁다고 말씀하시면서도 ‘이 마음의 부담을 잊을 수는 없겠다’라고 했습니다. TF는 이번 기행을 시작으로 2번째 활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활동의 주된 초점은 그 어떤 공식적 인정도 책임도 없었던 상황(조건) 속에서 ‘하나의 승리는 만들자’였습니다. 그 결과 국가배상소송 승소라는 값진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의 과제는 하나의 승리는 어떻게 확산시킬 것인지라고 할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학살에 대한 소송일 수도, 새롭게 시작될 진실화해위원회에 문을 더욱 힘차게 두드리는 것일 수도, 아니면 피해자가 이미 고령인 상황에서 민간 차원의 ‘진실규명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방향과 활동에 보다 많은 민변 회원들을 초대합니다. 이 기행기가 하나의 초대장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2025. 6. 학살 피해자 한국 방한 관련 짧은 영상을 공유드립니다. 한베평화재단 유튜브 채널 [미니 다큐]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 피해생존자 방한 이야기(2025.6.18~23) ▶ 유튜브 영상 바로가기(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