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기고] 민변 노동위원회 주최, ILO 결사의 자유 기본협약(제87호·제98호) 주해 저자 강연 후기 / 임예지 회원
- 2025-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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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노동위원회 주최,
ILO 결사의 자유 기본협약(제87호·제98호)
주해 저자 강연 후기
- 임예지 회원
4회차 동안 ILO 결사의 자유 기본협약(제87호·제98호) 주해의 저자직강을 따라가며 가장 먼저 인상 깊었던 점은, 국제노동기구(ILO)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노동자 권리의 최전선’으로 출발한 조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ILO는 1919년 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에 충격을 받은 서구 국가들이 혁명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노·사·정 3자 구조의 외교적 기구였습니다. 제네바의 웅장한 ‘궁전(palace)’ 건물에 자리 잡고 노·사·정이 각각 1표·1표·2표를 행사하는 조직 구조 자체가, ILO가 태생적으로 정치적이고 절충적인 기관임을 보여줍니다.
강연에서는 1944년 필라델피아 선언의 의미가 특히 강조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가던 시점에 “항구적 평화는 사회적 정의 없이는 보장될 수 없다”는 문장을 협약 부속서에 포함시켰다는 사실은, 지금 돌아보면 역설적으로 당시가 진보의 시대였음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1990년대 공산권 붕괴 이후 ILO는 점차 노동자 권익을 위한 ‘방패’ 기능을 약화시키고, 최근에는 파업권이 결사의 자유에 포함되는지 여부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할 만큼 보수화되었다는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미 헌법 제33조가 파업권을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음에도 이를 국제분쟁으로 가져간다는 사실에서, 오늘날 ILO의 변화와 복잡성이 체감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ILO가 한국에 대해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를 업무방해죄로 처벌하고 천문학적 손해배상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사법적 괴롭힘(judicial harassment)”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외교적 언어로서는 가장 높은 수위의 표현으로, 국제사회가 한국 사법체계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평소 영미법의 정제된 법언어에 관심을 두는 저로서는, 이 표현이 갖는 적절성과 무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유엔 인권 메커니즘은 기본적으로 naming and shaming, 즉 수치심을 통한 책임 촉구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그런데 그 관할권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는 국가는 보통 중국이나 북한 같은 독재국가들이었습니다. 우리 헌법은 비준 조약에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부여하고 있으며, 다자간 조약의 높은 추상성 때문에 조약 해석의 기준으로 ILO의 보고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국내 법원이 ILO의 100년 축적된 법리를 따르지 않으려면, 그와 다른 해석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제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게으르거나 무식하거나 둘 다”라는 표현이 무리한 비판으로만 들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검찰의 과도한 기소와 손해배상 청구 문제의 이면에 최종적인 사법적 판단을 내린 것은 법원이라는 토의가 가장 뼈아프게 다가왔습니다. 경찰 또는 용역이 노동자들을 물리적으로 탄압하고 검찰이 노동자에게 무리한 혐의를 적용하더라도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 수사기관의 처분, 공권력 행사는 위법한 것이 되어 손해배상책임을 구성해볼 수도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사법적 괴롭힘”이라는 비판을 받은 것은 결국 우리 사법부가 최소한의 견제 기능조차 충분히 수행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독립성을 보장받은 사법부가 시민의 기본권을 수호하지 못했다는 현실은 깊은 고민을 남겼습니다.
주경야독으로 강의를 따라가며 때로는 체계가 잡히는 듯하고, 또 때로는 기초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느낌을 반복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이 저에게는 매우 소중했습니다. 노동권은 헌법·국제규범·형사·민사·행정이 모두 교차하는 영역이지만, 그 핵심은 단순합니다. 노동자는 억압이나 괴롭힘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라는 점입니다. ILO의 역사와 현재, 한국 사법체계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을 배우며, 변호사로서 법원보다 빠르고 진보적이고 유연하되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상상력의 범위를 국제노동법규와 그에 대한 유권해석으로 확장해야 함이 더 명확해졌습니다.
민변 노동위원회 강의는 저에게 그러한 고민을 새롭게 시작하게 한 자리였습니다. 이 후기를 통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다른 저년차 변호사들에게도 작은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