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위][사후 공동보도자료] 야스쿠니 한국인 합사 철폐 소송 제소 기자회견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는 내 아버지를 해방시켜라!”
- 2025-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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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공동보도자료]
야스쿠니 한국인 합사 철폐 소송 제소 기자회견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는 내 아버지를 해방시켜라!”
□ 평화의 인사를 전합니다. □ 2025년 12월 23일 일본의 침략전쟁에 군인과 군속으로 강제로 동원되어 죽음에 이른 한국인 희생자 10명의 유족은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야스쿠니 한국인 합사 철폐 소송’을 시작합니다. □ 이 소송은 2001년부터 일본 법정에서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싸워 온 희생자 유족들이 일본 법원이 외면한 인권과 존엄의 회복, 정의의 실현을 위해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한국 법정에 처음으로 제기하는 소송입니다. □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붙임> 첨부파일 참고 1. 기자회견 개요 1부. 2. 소송 취지 및 개요 1부. 3. 소송 추진 경과 1부. 4. 참여 원고 소개 1부. 5. 원고 대표 발언 1부. 6. 대리인단, 지원단 소개 1부. 끝.======================================================================
[붙임1. 기자회견 개요]야스쿠니 한국인 합사 철폐 소송 제소 기자회견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는 내 아버지를 해방시켜라!”
- 때 : 2025년 12월 23일(화) 14시
- 곳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
- 주최 : 민족문제연구소 /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
- 순서
- 문의 : 김영환 (010-8402-1718/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소송지원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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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임2. 소송 취지 및 개요] 1. 소송 취지 및 개요 (1) 소송 취지 2025년 12월 23일 일본의 침략전쟁에 군인과 군속으로 강제로 동원되어 죽음에 이른 한국인 희생자 10명의 유족은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야스쿠니 한국인 합사 철폐 소송’을 시작합니다. 이 소송은 2001년부터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일본 법정에서 싸워 온 희생자 유족들이 일본 사법부가 외면한 인권과 존엄의 회복, 정의의 실현을 위해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 처음으로 제기하는 소송입니다. 지난 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판결로 일본 기업에 노무자로 끌려간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국내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군인·군속 피해자들은 한 국가를 다른 국가의 법정에 세울 수 없다는 국가면제(주권면제) 법리의 장벽에 가로막혀 국내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국가면제의 벽을 넘어선 판결이 나왔습니다. 2021년과 2023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한국 법원은 일본군 성노예제와 같은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인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불법행위가 법정지국인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발생한 경우 국가면제를 배제하여야 한다는 법리를 분명히 하였습니다. 이 판결로 군인·군속 희생자 유족들도 한국 법정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로 한 것입니다. 해방 80년이 지났지만 침략신사 야스쿠니에 무단으로 합사된 희생자들은 아직도 해방을 맞지 못했습니다. 또한, 이 소송 원고인 야스쿠니 무단 합사 피해자 유족들은 아버지가 일본 이름으로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것으로 인해 지금도 식민지의 굴레에 갇혀있는 듯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오늘 야스쿠니 한국인 합사 철폐 소송의 원고들은 강제동원 희생자와 유족의 인권과 존엄의 회복, 역사 정의의 실현을 위해 한국 사법부의 문을 처음으로 두드립니다. 이는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으로 얼룩진 동아시아의 과거를 극복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소중한 발걸음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2) 소송 개요 1) 일제강점기 일본국에 의해 군인·군속으로 강제동원되어 아시아·태평양전쟁의 전선에서 사망한 조선인 희생자 10인의 유족들이 ① 피고 일본국을 상대로 강제동원 및 사망 발생, 그리고 사후 ‘전몰자명부’ 제공 등으로 야스쿠니신사의 무단 합사에 관여한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② 피고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무단 합사로 인한 손해배상과 함께 제신명표·제신부·영새부에서 희생자 성명 삭제(합사 철폐)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합니다. 2) 피고들의 구체적인 불법행위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① 일본국의 불법행위(강제동원 및 사후 관여) 일본국은 총동원 체제 아래 식민지 조선인들을 군인·군속으로 강제동원하여 전선 및 인접 지역에서 사망에 이르게 했고, 사망 이후에도 희생자 인적 정보·명부 제공 등으로 야스쿠니신사의 합사에 관여하였습니다. ② 야스쿠니신사의 불법행위(무단 합사 및 지속) 야스쿠니신사는 일본국과의 긴밀한 협조 아래 전사자 명부를 토대로 희생자들을 무단 합사하고, 오늘날까지 이를 유지하면서 유족들의 추모감정, 인격권, 종교·양심의 자유를 계속 침해하고 있습니다. 유족의 의사에 반하는 특정 종교·이념 체계의 추모 구조에 희생자를 편입시키고 유지하는 것은, 침해가 현재진행형인 계속적 인격권 침해입니다. 3) 희생자들은 사망 후에도 본인이나 유족의 동의 없이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어, 오늘날까지 일본의 ‘천황을 위한 전몰자’ 서사에 편입된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원고들은 이 상태를 끝내고, 희생자들이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의 피해자였다는 역사적 진실 위에서 유족이 원하는 방식으로 온전히 추모할 권리를 회복하고자 합니다. (3) 이 사건 소송의 목적 원고들은 대부분 어린 나이에 부친을 강제동원으로 잃었고, 해방 이후에도 사망 경위와 행적을 알지 못한 채 수십 년을 보냈습니다. 1990년대 이후 피해자 스스로 부친의 기록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 정부가 작성한 군인·군속 명부 등을 찾아 사망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희생자 명부에 ‘합사제(合祀済)’ 기재가 있음을 보고 비로소 야스쿠니 합사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강제동원으로 가족을 잃은 충격을 뒤늦게 확인한 데 더해, 희생자가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어 있다는 사실은 유족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정신적 고통이었습니다. 유족들에게 야스쿠니 합사는 단순한 종교의례가 아니라, 희생자를 침략전쟁 미화의 구조 속에 편입시키는 가해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원고들이 구하는 것은 전쟁으로 죽음에 내몰린 뒤에도 다시 ‘천황을 위한 전몰자’로 편입된 상태를 끝내는 것, 그리고 희생자들이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의 피해자였다는 역사적 진실 위에서 유족이 원하는 방식으로 온전하게 추모할 권리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무단 합사의 철폐는 희생자들의 생전 의사와 유족의 양심·신념이 온전히 관철되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존엄을 침략전쟁을 합리화하는 국가적 기억 체계로부터 분리하여 되돌려 놓는 일입니다.======================================================================
[붙임3. 소송 추진 경과] * 일본 소송 경과 1) 재한 군인‧군속 피해자 손해배상청구소송(2001.06~2011.11) - 2001.06.29. 제소. 원고 252명. 도쿄지방재판소- 06.12. 추가 제소. 원고 162명
- 05.25. 1심 판결. 청구 기각
- 05.26. 항소. 도쿄고등재판소
- 10.29. 항소심 판결. 항소 기각
- 07.30. 상고. 최고재판소
- 11.30. 상고심 판결. 상고 기각
- 02.26. 제소. 원고 11명. 고인형, 김기호, 김희종(생존자), 나경님, 박임선, 여명환, 윤옥중, 이종진,
- 07.21. 1심 판결. 청구 기각
- 08.03. 항소. 도쿄고등재판소
- 10.23. 항소심 판결. 항소 기각(확정)
- 10.22. 제소. 원고 27명. 권향자, 김문영, 김용자, 김진석, 김희복, 남영주, 동정남, 문철영, 박기철,
- 05.28. 1심 판결. 청구 기각
- 06.07. 항소. 도쿄고등재판소
- 05.26. 항소심 판결, 항소 기각
- 06.03. 상고. 최고재판소
- 01.17. 상고심 판결. 상고 기각. 미우라 마모루(三浦守) 재판관 원고 주장을 인용한 소수의견 판단
- 09.19. 제소. 원고 희생자 4명의 손주 6명. 박선엽, 박효선, 박선재, 길형민, 오진순, 이성우.
- 12.19. 제1차 변론 기일. 원고 박선엽 법정 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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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임4. 참여 원고 소개] 1. 야스쿠니 한국인 합사 철폐 소송 원고 대표| 원고 / 관계 | 이희자(1943.01.03.) / 딸 | |||
| 희생자 | 이사현(李原思蓮, 육군 군속) | |||
| 생년월일 | 1921.01.12. | |||
| 동원시기 | 1944.02.15. | |||
| 동원장소 | 특설건축근무 제101중대 | |||
| 사망일 | 1945.06.11. | 사망장소 | 중국 광시성 | |
| 합사일 | 1959.04.06. | 기존재판 | 군인군속 재판, 야스쿠니 1차 | |
| 순번 | 원고 | 희생자와의 관계 | 희생자 출생년도 | 동원 시기 | 사망일 | 합사일 | 신분 | 소속 | 사망 장소 |
| 1 | 이희자 | 고 이사현의 딸 | 1921 | 1944 | 1945.06.11 | 1959.04.06 | 육군 군속 | 특설건축근무 제101중대 | 중국 광시성 |
| 2 | 동** | 고 동선홍의 아들 | 1911 | 1943 | 1944.10.25 | 1959.10.17 | 해군 군속 | 오미나토 시설부 | 북태평양 (쿠릴열도 치린코탄섬/하쿠요마루) |
| 3 | 박** | 고 박풍현의 아들 | 1922 | 1940 | 1945.06.20. | 1959.04.06 | 육군 군인 | 보병 제77연대 | 필리핀 민다나오섬 바탄 |
| 4 | 박** | 고 박만수의 딸 | 1920 | 1942 | 1944.02.24 | 1959.10.17 | 해군 군속 | 브라운섬 제4시설부 | 마셜제도 브라운(에니웨톡) 환초 |
| 5 | 신** | 고 박헌태의 며느리 | 1924 | 1944 | 1944.12.19 | 1959.04.06 | 육군 군인 | 독립혼성 제90여단 포병대 | 중국 안후이성 |
| 6 | 이** | 고 이희경의 딸 | 1919 | 1942 | 1944.10.29 | 1959.10.17 | 해군 군속 | 제15설영대 | 파푸아뉴기니 기루와 (사나난다-기루와) |
| 7 | 이** | 고 이민구의 딸 | 1921 | 1940 | 1944.04.28 | 1959.04.06 | 육군 군인 | 보병 제79연대 | 파푸아뉴기니 세픽강 하구 |
| 8 | 장** | 고 장천옥의 딸 | 1920 | 1943 | 1945.05.01 | 1959.10.17 | 해군 군속 | 오미나토 시설부 | 기타치시마 (쿠릴열도/죠와마루) |
| 9 | 최** | 고 최병석의 딸 | 1916 | 1943 | 1943.09.19 | 1959.10.17 | 해군 군속 | 시바우라 제4시설부 | 남양군도 트럭제도 (미크로네시아연방 추크섬) |
| 10 | 한** | 고 이은휘의 며느리 | 1922 | 1941 | 1944.07.11 | 1959.04.06 | 육군 군인 | 보병 제78연대 | 파푸아뉴기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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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임5. 원고 대표 발언]“내가 한국에서 일본 정부와 싸우는 이유”
야스쿠니 한국인 합사 철폐 소송을 한국 법원에 제기하기까지 25년이 걸렸습니다. 제 아버지가 돌아가신 1945년으로부터 꼭 80년 만에 그 억울한 죽음에 대한 문제를 한국 법원에 제기하게 된 것입니다. 올해가 광복 80주년이라지만 아직도 야스쿠니에 갇혀 계신 우리 아버지들은 해방을 맞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들의 자식인 우리는 여전히 일본과 야스쿠니신사의 식민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여기 모인 우리 원고들은 모두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평생 한을 품고 살아온 유가족입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야 피해자들이 스스로 일본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피해 사실에 관한 기록을 하나씩 찾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증거로 야스쿠니 무단 합사 철폐를 요구하는 법정 싸움(재한 군인군속 소송)을 시작한 것이 2001년 6월부터입니다. 그 소송투쟁 과정에서 우리 유족들은 대한민국이 엄연한 독립국으로서 존재했던 1959년에 우리 아버지들을 야스쿠니신사에 멋대로 합사시켰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야스쿠니 합사 사실을 확인한 원고들이 2007년부터 야스쿠니 무단 합사 철폐 소송(‘NO! 합사’ 소송)을 제기해 지금 3차 소송투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오늘 원고로 참여한 여덟 분, 그리고 가족을 대표해서 참여한 며느님 두 분 역시 오랜 기간 일본 정부, 그리고 야스쿠니와 싸워 온 분들입니다. 저는 1943년 1월생으로 올해 나이 여든둘입니다. 제가 태어난 지 13개월 만인 1944년 2월, 아버지는 육군 군속으로 끌려가셨습니다. 여러 번 피했지만, 징용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게 되었고, 그것이 우리 가족과의 마지막 이별이 되었습니다. 갓난아이였던 저는 아버지의 얼굴을 사진으로만 알고 자랐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을 마음속에만 품고 살아오다가, 1989년이 되어서야 자식 된 도리를 하고자 아버지의 흔적을 찾기 위해 피해자 단체를 찾아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92년 아버지의 사망 사실을 처음으로 기록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피징용사망자연명부>라는 기록에 아버지는 해방을 불과 두 달 앞둔 1945년 6월에 사망하셨고, 그 이유는 ‘전상사(戰傷死, 전투 중 부상으로 인한 사망)’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군속으로 가신 분이 왜 전투 중에 다쳐 돌아가셨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이 명부는 1971년 한국 정부가 청구권 자금으로 사망자 보상금을 지급하기 위해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1965년 청구권 협정 체결 당시에는 한국인 희생자 명부를 내놓지 않았다가, 뒤늦게 한국 정부가 요청하니 2만 1,709명의 명단이 실린 <피징용사망자연명부>를 제공했던 것입니다. 첫 기록을 찾은 때로부터 5년이 흐른 1997년, 일본 육군 군인·군속의 신상 정보를 기록한 <유수명부>라는 문서에서 아버지의 기록을 두 번째로 발견했습니다. 거기엔 사망 일자 외에 ‘합사제(合祀済)’라는 표시와 ‘공(供)42524’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일본의 전후 보상 운동 활동가들은 이것이 아버지가 야스쿠니에 합사되어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받지 못한 급여가 공탁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문서를 발견했을 때, 첫 번째로 느낀 분노는 한국 정부가 이미 1993년 10월 일본 정부로부터 24만 3,992명의 군인·군속 명부를 넘겨받아 보관하고 있었음에도, 유족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른 채 기록을 찾아 헤맸다는 점이었습니다. 두 번째 분노는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난 죄로 전쟁터에 끌려가 죽은 것도 억울한데, 일본 정부가 유족에게 사망 통지도 하지 않고, 유족의 뜻도 묻지 않은 채 자기들 마음대로 강제 합사를 시켰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를 강제로 끌고 가 죽게 만들어 놓고, 일본을 위해 돌아가셨다며 야스쿠니에 합사시켜 놓았다니, 그 모욕감과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처지의 많은 유족 또한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에 집단적인 기록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정부기록보존소(현 국가기록원)에 기록 조회를 요청했고, 공탁금, 사망 사실, 군사우편저금 등의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일본대사관, 일본 후생성, 우정성 등에 기록 확인 요청서를 보냈습니다. 두 달 남짓 지나 회신이 오면 그 기록을 하나하나 모아서 소송투쟁을 해왔고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유족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고 피해 보상을 요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피해자단체만으로 피해 사실을 일일이 확인하기란 한계가 많았습니다. 게다가 이 불행은 우리가 식민지였기 때문에 겪은 피해이지 개인이 잘못해서 감당해야 할 불행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한국 정부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하라는 ‘강제동원진상규명특별법’ 제정 운동을 2000년부터 시작했습니다. 피해자들이 이 법을 제정하기 위해 1인 시위, 거리 서명 운동, 특별법 공청회 등을 개최하고 국회의원실마다 일일이 방문하며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3년 6개월에 걸친 노력 끝에 2004년 2월 13일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같은 해 11월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문제, 즉 야스쿠니 합사 철폐 문제만큼은 단 한 발짝의 해결도 협상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2001년부터 우리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가 이제껏 숨겨왔던 만행을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의 야만적 행태, 지속된 가해와 폭력성을 고발하는 소송을 지금도 일본에서 이어가고 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우리의 요구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일본 재판부는 판결문에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잘 모실 테니 너희는 너희 방식대로 추모하면 된다.”라는 논리를 폈습니다. 또한, 그들만의 기준으로 유족들이 참을 만하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라는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일본 재판부가 이런 결정을 할 권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희생자를 추모할 권리와 결정권은 우리 유족에게 있는 것 아닙니까? 이런 판결이야말로 일본 재판부가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의 만행을 계속 감추기 위한 엉터리 판결일 뿐입니다. 일본 사법부마저 피해자를 기만하는 공범이나 다름없는 이 상황이 바로 식민지가 아니라면 무엇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일본 사법부가 이런 판결을 내린다고 해서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강제로 합사시킨 사실이 없던 일이 되겠습니까. 이 아픈 역사를 언제까지 유족들이 감내해야 합니까. 저는 언제까지 피해자로 살아야 합니까. 광복 80주년인데, 왜 저는 아직도 일본 식민지 피해자로 남아야 합니까. 올해는 한일협정 체결 60주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국인 야스쿠니 합사 문제가 14년이나 이어진 한일회담에서 왜 단 한 번도 다루어지지 않았는지, 1959년에 한국인을 강제로, 마음대로 합사시켜 놓고도 일본 정부는 한일회담에서 왜 그 사실을 숨겼는지 이제라도 밝혀야 합니다. 한일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유골 문제뿐 아니라 한국인 합사 사실을 숨겼다는 것만으로도,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는 한국 정부와 우리 유가족을 기만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대법원은 2018년에 일제 식민지배는 불법이며, 강제동원은 반인도적 불법행위라고 분명히 판결하였습니다. 원고의 아버지들은 일본 정부가 불법적으로 강제 동원하여 사망에 이르게 했고, 야스쿠니신사가 무단으로 합사시켜 여전히 해방되지 못한 채 우리 유족마저도 굴욕적인 식민지의 굴레에 가두고 있습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이제는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 일본 사법부의 만행을 즉시 멈추고 유족의 당당한 권리를 되찾고자 합니다. 진정한 해방을 위해, 그리고 피해자의 인권 실현을 위해 함께 싸워주십시오.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는 내 아버지와 내 가족을 해방시켜라!2025년 12월 23일
원고들을 대표하여 이희자가 씁니다.
====================================================================== [붙임6. 대리인단, 지원단 소개] 1. 야스쿠니 한국인 합사 철폐 소송 대리인단| 이름 | 직책 | 소속 및 경력 | |
| 1 | 장완익 | 단장 | ·법무법인 해마루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 후지코시 강제동원 소송 대리인 |
| 2 | 이상희 | 부단장 | ·법무법인 지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일본군 ‘위안부’문제 대응 TF팀 단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강제동원 소송 대리인단 |
| 3 | 박규훈 | 간사 | ·법무법인 광화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 |
| 4 | 권태윤 | ·법무법인 에이프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 위원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일본군 ‘위안부’문제 대응 TF팀 | |
| 5 | 김단영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베트남전TF | |
| 6 | 김예지 | ·법무법인 지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일본군 ‘위안부’문제 대응 TF팀 | |
| 7 | 류광옥 | ·법무법인 양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일본군 ‘위안부’문제 대응 TF팀 ·나눔의 집 공익제보자 법률대리인 | |
| 8 | 박인숙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강제동원 소송 대리인단 | |
| 9 | 소현민 | ·법무법인 위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금융부동산팀 간사 | |
| 10 | 양성우 | ·법무법인 지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일본군 ‘위안부’문제 대응 TF팀 | |
| 11 | 이동준 | ·법무법인 피앤케이 ·대한변호사협회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강제동원 소송 대리인단 | |
| 12 | 전다운 | ·법무법인 지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위원장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일본군 ‘위안부’문제 대응 TF팀 | |
| 13 | 황호준 | ·법무법인 덕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
| 이름 / 소속 | 직책 |
| 김승은(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집행위원장) | 집행위원장 |
| 김영환(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 사무국장 |